읽지 마라. 숨이 턱턱 막힌다. 세상의 밑바닥 그 아래, 한 치도 에누리 없는 알몸 그대로 인간을 만나는 곳. 박영희, 그가 있었던 학교는 ‘감옥’이다.
‘젓가락을 씹지도 않은 채 꿀꺽 삼켜버린’ 일이 심심풀이 소동으로 취급되는 곳, ‘어디, 조용한 데 가서/혼자 살고 싶다는’ 말이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곳, 스물일곱의 청년이 ‘웩, 목 졸려 죽’어도 ‘누구도 책임질 필요 없는’ 곳, 감옥이다. 그의 청춘이 육 년 칠 개월이나 갇혔던 곳!
시를 읽어가며 호흡이 가빠질 때마다, ‘그는 왜 갇혔었나?’ 끊임없이 물어봐주길 바란다. 삼십 년을 갇혀 살고서도 코앞에 있는 접견실도 못 가본 장기수가 있는 한, 우리의 삶도 여전히 철조망에 갇혀 있는 게 분명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 앞길이 막힌 청년들, 갈 곳 없는 노인들 앞에 잠긴 문은 또 다른 감옥이다. 곱씹어 보시길.
이응인(시인)
온기도 없고 말 나눌 상대도 없는 독방에 갇힌 채 “군용 매트리스 한 장/이불 한 장/속옷 세 벌/수건 두 장/양말 세 켤레/내의 두 벌/티셔츠 두 장”(「소유」)으로 버텨야 했던 시인의 세월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리고 단 하루라도 좋으니 형광등을 끄고 잠들 수 있고, 따뜻한 방에서 한숨 푹 잘 수 있고, 목욕탕에서 언 몸을 녹일 수 있고, 흠뻑 비에 젖은 채 밤길을 걸을 수 있고, 사랑하는 딸에게 마음대로 전화를 걸 수 있고, 그리고 자신의 방문을 직접 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인의 토로에 눈물이 난다. 일제하의 징용 광부들에 관한 서사시를 쓰고자 방북했다가 15년 형을 받고 독방에 갇힌 채 6년 7개월을 보내고 특사로 풀려난 시인이 철창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부른 뜨거운 노래들, 나는 그 앞에서 미안하고 부끄러워 눈을 감는다. 그리하여 시인이 검열 받는 편지에서 마음대로 쓸 수 없었던 “인권, 민주주의, 자유, 평화, 민중, 혁명, 통일…… 그리고 섹스”(「봉함엽서」)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는다. 통일이며 인권의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될 세상이 우리가 살아 있는 날에 올 수 있을까.
맹문재(시인,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