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 『사과를 내밀다』가 있다. 전태일문학상, 윤상원문학상, 고산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로 있다.
노동자의 죽음은 모두 타살이라고 쓴 적이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강요된 노동을 해야 하는 기계 노동 자체가 살아 있는 생명의 활동이 아닐 뿐더러, 정상적인 수명을 다 누리지도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이러한 현실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 의문사든, 자결이든, 투신이든, 분신이든 극단적인 탄압 속에서 이루어진 죽음은 모두 사회적·정치적 타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시집을 받아들고 혼란에 사로잡혔다. 그가 신중하게 쓴 시가 왜 시 같지 않은가? 우리 시단에 뛰어난 시적 성취로 많은 주목을 받아온 시인에게 무슨 시적 억하심정이 있는 것일까? 『유심』에 연재된 시들을 빠짐없이 읽어왔으나, 다시 시집을 두 번 더 읽은 후에야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집에 실린 65편의 시는 ―시인이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1970년대 이후 이 땅의 노동 열사 68위(位)의 처절한 비문(碑文)이 아닌가! 이 시대 성장 신화의 제물로 바쳐진 기룬 양들의 뼈와 분노와 슬픔을 한 점 한 점 수습하여 시의 집에 안치하고 묘역을 조성한 것이 아닌가! 시가 이 시대에 무엇을 애도해야 할 것인가? 맹문재 시인이 아니고 누가 이런 방식으로 질타할 수 있는가? ‘오든’의 시가 불현듯 떠오른다. “시계를 멈추어라/전화기를 뽑아라”. 이 시집을 읽는 동안 “개들이 짖지 못하게 하라”. 백무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