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시인들이 그러하듯 권진희도 살아온 날들을 시의 뿌리로 삼고 있다. 가난했던 성장기를 보내고 기자로 전전하다가 생계를 이으려고 학원가에 뛰어들었다는, 시에 스며든 그의 이력이 그렇고, 해마다 불어나는 아랫배를 민망해 하는 중년다운 고백이 또한 그러하다. 한 생을 결코 가벼이 방목할 수 없어 “생계의 고방”(「나의 노래는」)에서나 자청하는 그의 노래는 그러므로 갇혀서 갑갑해 하는 질박한 소시민의 애환이 되어, “밑자리에 차가운 발 넣고 드러눕고 싶었던”(「엇노래」) 어머니 품속 같은 회한과, 반가사유의 자세로 손바닥을 펴고 잠이 든 딸들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팔불출 바보 아버지’(「반가사유」)의 초상을 함께 포개놓는다.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가족에게 투신하면서 홀로 눈물겹게 출렁거리는, “살기 위해 외발로 걷기도” 해야 하는, 영락없는 생활인의 자화상을 그의 시는 끌어안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시인은 금방이라도 떠내려가버릴 오늘을 견디게 하고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희망이 바로 그 일상에서 솟구쳐 오른다는 것을 안다. 노점상의 리어카 비닐 포장 위에 올려놓은 ‘벽돌 한 장의 힘’(「벽돌 한 장」)을 그는 굳게 믿는 것이다. 그에게 삶의 자리는 단순한 소비처가 아니라 ‘불러낸 바람’과 더불어 ‘검은 소’를 찾아 해매는 구도자의 여정(「심우」)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가 “제 몸 두드려 우는 풍경 소리”(「운문사 흙길에서 너를 만나다」)의 애잔 속을 살아가기보다, “저 만년설의 내일처럼 의연하기를”(「만년설」) 스스로 다짐하면서, 이 비루한 삶에서도 완성을 향해 꿋꿋하게 나아가기를 당부해보는 것이다. 김명인 (시인, 고려대 교수)
권진희 시인은 성품이 참 어진 시인이다. 그 어진 마음이 이번 시집의 시편들에 아름답게, 때론 날카로운 형상으로 빼곡히 배어 있다. 인생의 은밀한 비의를 드러내 사람들에게 삶의 실존이나, 역사 혹은 현실에 대한 자기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게 시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라면, 권진희 시인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는 이런 기능에 매우 충실하다. 「벽돌 한 장」처럼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서도 “누군가의 손길 가만가만 간직”하면서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이타적이고 어진 시인의 마음이 이처럼 뛰어나게 표출된 시집을 만나기도 결코 쉽지 않다. 김용락 (시인, 경북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