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도(助藥島=藥山島)에서 태어남. 현대문학 추천(오영수 推薦). 월간문학 신인상. 세계의문학 중편 『난동(暖冬)』(유종호 推選)으로 작품 활동. 제1회 채만식문학상 수상.
작품 활동 창작집: 『수평인간』 『장군과 소리꾼』 『진경산수』 중편집: 『반쪽거울과 족집게』 『백갈래 강물이 바다를 이룬다』 장편소설: 『숨겨진 햇살』 『높은 곳 낮은 사람들』 『만남, 그 열정의 빛깔』 『여인의 새벽』(전5권) 『해인을 찾아서』(대산창작지원금 수혜) 『토굴』 『천년의 찻씨 한 알』(문예진흥기금 수혜) 『삼겹살』(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선정) 『감꽃 떨어질 때』(세종우수도서 선정, 전주영화제 작품 선정) 『남도』(전 5권) 현재 한실 작가의 집에서 자연과 벗하며 세상을 가꾸다.
“한 선생, 대일본제국의 운명이 곧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습니다. 침략제일주의에서 패망의 갈림길에 이르렀어요.” 교장은 순간 비통한 얼굴로 변하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민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전율이 흐르면서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교장의 입에서 감히 그런 말이 나오다니, 예삿일이 아니었다.누구보다도 뉴스가 빠른 교장이고 보면 돌아가는 전황을 남 먼저 알 것이었다. “곧 전쟁에 집니다.” “연일 승전보를 알리지 않습니까.” “그것은 마지막 발악이자 허세인지 모르지요. 머지않아 대일본제국은 이 땅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가고 있어요.”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 p.15
소몰이 식으로 면내 마을을 한 바퀴 돈 여동네는 다음 마을로 향하였다. 섬 전체를 돌 모양이었다. 새로 불어난 군중들 앞에서 청년 하나가 일장 성토를 하고나서 그녀를 앞세웠다. 여동네는 마치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인의 몰골이었다. 마을 당상나무께에 이르렀을 때, 뒤따르던 무리들이 둥둥둥, 등 뒤에 매단 북을 울렸다. 고사라도 지내겠다는 걸까? 그 순간, 여동네가 허물어지듯 주질러 앉았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치심과 절망감이 그녀의 육신을 누질렀다. 뒤따르던 사람들도 멈칫하였다. 그때, 누군가 사람들을 헤치고 여동네를 안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를 들쳐 업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성에, 그만한 일로 사람을 그렇게 죽여사 쓸께? 목매달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하데.” “사람들의 감정이란 군중심리에 휩쓸리기 마련 아니냐. 개개인을 대하면 이 좁은 섬구석지에서 어떻게 그렇게 허것냐. 사람을 만만하게 보고 그런 것이제.” --- p.85
한민서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정말 이번 만남으로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리라. 사랑은 국경이 없다지만 분명 이룰 수 없는 장애가 가로 놓여 있음을. “둘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이 찢어지네.” 그녀의 어머니 역시 가슴이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외동딸을 맡기기에는 어느 한구석 나무랄 데 없는 신랑감이었다. 한민서가 예고 없이 들어설 때마다 사윗감으로 반겨 맞지 않았던가. “앞으로 그런 고통을 심어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한민서는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항구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날도 항구의 바다빛은 저랬지. 그녀는 진솔하였다. 한민서가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하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처음 향하였던 그 마음을 허물어뜨리지 않았다. 그리움과 비례하여 따라오는 고통스러움. 그녀는 그 고통스러움을 지금까지 가슴에 여미었다. --- p.174
“쥐새끼 같은 놈.” 판봉을 찾던 무리들은 그의 아버지를 끌어내어 작신작신 짓밟았다.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지나자 각 마을 책임자를 선출하였다. 한성서도 강압적으로 떠맡기는 바람에 마을 책임자가 되었다. “살다보니 생각지도 않은 감투를 쓰는구만.” 한성서는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다는 듯 검숭한 구레나룻을 쓰다듬었다. “끝까지 사양하지 않고.” 한장서는 탐탁지 않은 얼굴을 하였다. 세상이 또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어거지 감투를 쓰다니. “전들 좋아서 맡은 겁니까. 그 자리에서 싫다고 해 보시요. 어떠한 대가가 주어질지요.” “그렇기는 하네만, 한 가지 의문점이 있어.” “뭔데요?” “생각해 보게. 인근지역에서는 그 어느 곳도 인민군이 기습 공격을 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이곳만 나타난 건가?” “윗녘에서도 인민군들이 야습을 감행한다고 하지 않던가요.” “그것은 산으로 숨어든 빨치산들이 나타난 거지. 그런데 저들은 당당한 점령군들이잖은가.” “형님 말을 듣고 보니 좀 그런디요. 뭔가 이해 못할 구석이 있구만요. 민서 형님에게 사람을 보내야 쓰것소.” “아직은 오지 말라고 하게. 내 뜻을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