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건강하지 못한 기질이 내 글쓰기 속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삶의 우울한 부분을 찾아 나서고 사물의 어두운 부분에 집착했다. 예민해졌고, 내게 쏟아지던 칭찬보다 비난에 더 많이 마음이 쏠렸다. 적지 않은 나이에 떠밀리다시피 학생이 된 나는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지식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작가가 되고 싶은 충동 때문에 첫 작품<도보 여행기>를 발표했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도보 여행기>에는 문법적인 오류가 수없이 많았다. 출판하기 전에 돈을 들여 교정 작업을 거쳤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런 일엔 익숙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한 실수들을 찾아내 비웃으며,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엔 일부러 눈을 감았다. 오로지 오류를 찾아 내기 위해 내 책을 읽었던 사람들이 누군지 난 알고 있다. 그들은 내가 '아름다운' 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사용했는지 꼼꼼히 세고 따지는 성가신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희가극 작가였고 비평가였던 어떤 신사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자리에는 나도 있었다. 몇 번이고 이런 식으로 내 작품을 찢어발겼다. 모든 게 다 엉터리이고 틀렸다는 그의 얘기를 듣고 있던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책을 집어 들고 접속사 '그리고'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 p.129
우리 가족의 방은 구두를 만드는 작업대와 어른 침대와 내가 쓰는 아기 침대만으로도 가득 찼다. 그 작은 방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벽에는 그림들이 붙어 있었고, 아버지의 작업대는 책이며 악보들이 수북하게 놓였고, 작은 부엌은 반짝거리는 접시와 냄비들로 가득했다.
pp.24-25
아버지에게 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존재였다. 아버지는 나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일요일이면 나를 위해 만화경을 만들었고, 또 인형을 만들어 인형극을 펼쳐 보였다. 아버지는 내게 홀베르크의 희곡과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어주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아버지는 오직 이럴 때만 정말이지 쾌활해 보였다. 아버지는 일생을 사는 동안 구두 수선공으로서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사람이다.
--- p.25
“내가 백작이 되면 내 성에서 일하게 해줄게!”
여자아이는 깔깔거리며 웃고는 가난한 꼬마 주제에 어떻게 백작이 되느냐고 했다. 어느 날 나는 성을 하나 그려서 보여주며 내 성이라고 말했다. 태어날 때 가난한 집 아이와 실수로 뒤바뀌는 바람에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살고 있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또, 이런 사실은 하나님이 아무도 모르게 천사들을 내게만 살짝 보내 가르쳐줘서 알았다는 말도 했다. 여자아이는 나를 보고 이상하다는 듯 웃더니 옆에 있던 다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쟤도 자기 할아버지처럼 바본가 봐.”
--- pp.3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