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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발견한 땅을 지도나 그 밖의 수단을 통해 자세하게 묘사하는 행위는 ‘새로운 영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의 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그런 행위를 통해서 ‘광범위한 탐험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었던 지식’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북아메리카를 탐험하는 네덜란드 탐험가들에게 새로 발견한 땅을 ‘세밀한 지도로 작성하고 주변 상황을 완벽하게 묘사’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 지침에 따라서 제작된 지도는 단순히 발견한 내용을 알리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 pp. 64~65
데이비드 분의 사례는 서부로 뻗어나가려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이들은 신의 목소리를 듣고 야만과 미개의 땅을 문명화하는 사명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들이 원한 것은 내세의 구원이 아니라 현세의 땅이었다. 분을 가장 앞장서서 찬양한 사람들은 땅 투기꾼이었다. 이들은 이민자를 켄터키로 불러들이려고 혈안이 되었으며, 켄터키가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지 설득하는 데 분의 삶은 가장 좋은 사례였다. 이후 백 년 혹은 그 이상에 걸쳐서, 분의 삶을 다룬 수많은 전기와 역사책과 소설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해서 분의 삶은 점차 미국이 새로 차지하게 된 땅에 대한 이야기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미국인에게 끊임없이 공명을 불러일으키는데, 최근에 워싱턴에서 열린 미술 전시회에서는 그를 ‘숲 속의 콜럼버스’라고 불렀다. - pp. 259~260 수많은 사람 그리고 수많은 민족이 자기가 현재 살고 있는 영토에 대한 연고를 강하게 주장하지만, 사실 모든 사회는 원래 다른 곳에 살다가 현재의 땅으로 이주해서 자리를 잡고 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래에는 이 사회 전체 혹은 일부가 다른 곳으로 이주할지도 모른다. 혹은 오랜 시간이 흐르는 과정에서 이들 사이에 다른 사회의 구성원이 섞이고, 그 구성원의 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사회의 성격이 전혀 다르게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회도 자기가 현재 살고 있는 땅을 영원히 혼자서만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그리고 이 세상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우리 모두의 땅일 뿐 아니라 앞으로도 모든 사람의 고향으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이러한 변화를 보다 유익한 계기로 삼을 수 있다. - p. 432 --- 본문 중에서 |
* 정복의 10가지 법칙-정복을 정당화하는 역사 만들기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집단은 그 땅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즉, 인류 역사상 ‘남의 땅을 빼앗아 차지하는’ 정복의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 바로 이러한 의문이 근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이 책이 답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저자가 말하는 정복이라는 개념에는 멀리 떨어진 식민지를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에서 실행된 ‘식민주의’는 이 책의 내용과 거의 관계가 없다. 정복을 식민주의로 한정지을 경우 콜럼버스 이전 수백 년간 이루어졌던 정복을 설명할 수 없을 뿐더러, 탈식민지 시대라고 하는 현재도 팔레스타인 인, 그리스의 마케도니아 인, 이라크와 터키의 쿠르드 족처럼 땅을 뺏기고 신음하는 민족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22~23p) 따라서 이 책의 정복 개념은 ‘새로운 땅을 발견한 정복자 집단이 그 땅으로 밀고 들어가 기존의 거주민을 몰아내고 그 땅을 자기 것으로 차지하는 것’을 일컫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과정은 다음 10단계로 진행되며,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목차이다. 1. 법률적 소유권의 주장 새로운 땅을 발견한 탐험가는 깃발을 꽂는다든가, 발견기념비를 세운다든가, 그 땅의 흙을 한줌 퍼 담는다든가 하는 상징적인 행위로 그 땅이 자신의 후원자의 소유임을 선언했다. 이들은 특히 영문도 모르는 원주민을 세워놓고 의식을 치름으로써 소유권을 인정받았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거나, 구리 메달을 특별히 제작해 원주민에게 쥐어주고 후일 다른 경쟁 국가의 탐험대가 왔을 때 이 메달을 보고서 이미 다른 나라가 발견한 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했다. 2. 지도 제작 지도를 만든다는 것은 그 땅을 안다는 것이다. 제대로 정복하려면 그 땅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기에 정복자들은 서로 앞다투어 지도를 제작했고, 정복자들과 달리 자기가 사는 땅의 지리를 잘 알 수 없었던 원주민을 몰아낼 명분을 세울 수 있었다. 이처럼 지도뿐만 아니라 새로 발견한 땅의 동식물, 광물 등의 표본을 전시한 박물관, 박물지, 그리고 이들 이국적인 풍경을 묘사한 기록물이나 기행 문학은, 서구의 독자들에게 신비로운 간접 경험을 안겨주고 그 땅을 통째로 소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해주었다. 3. 이름 붙이기 이름이란 어떤 공간을 특정한 장소로 바꾸는 행위이다. 어떤 지명 하나가 널리 쓰이면, 그 땅은 그 이름을 붙인 나라의 소유임을 인정받는다. 대표적인 예로, 네덜란드의 지배력이 클 때 오스트레일리아는 ‘뉴홀런드’라 불렸다. 하지만 이 대륙에 영국의 지배력이 커지면서 영국 탐험가가 지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부르던 이름은 지금 그 땅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4. 야만인 몰아내기 기존의 원주민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야만’이라는 개념이 필요했다. 원주민과 물품만 교류하고 아직 침략의 의도가 없을 때, 원주민의 삶은 ‘자연 상태의 행복 그 자체’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침략이 목적이 되자마자 원주민은 ‘인간 이하의 야만인’으로 묘사되었고, 침략자들은 야만을 몰아내야 한다는 명분으로 정복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5. 정복자의 권리 정복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정복자는 소유권을 가진다는 믿음은 오래된 것이다. 승리가 모든 것을 정당화시켜준다. 이러한 생각은 과거 조상이 차지했던 땅이라는 이유로 현재 그 땅을 소유하려는 행위를 정당화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가 지중해 동쪽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 것도 그곳이 고대 로마 제국의 땅이라는 이유에서였으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인을 몰아낸 명분도 팔레스타인은 고대 이스라엘의 땅이라는 이유였다. 6. 정복한 영토 지키기 정복군이 영토를 정복하자마자 하는 일은 요새나 성을 쌓는 일이다. 이것은 방어의 기능과 함께, 그 웅장한 위용으로 성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주변 땅의 주인이 바로 이 성임을 과시하는 기능을 했다. 또한 두꺼운 벽과 포탑을 갖춤으로써, 원주민의 저항 의지를 원천적으로 꺾는 심리적인 기능도 했다. 7. 이야기 만들기 정복을 정당화하려면, 즉 빼앗은 이 땅이 내 땅임을 인정받으려면 땅과 나를 강하게 결속시켜주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인이 마케도니아 지역을 광범위하게 지배했던 고대 알렉산더 대제국 이야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이유는, 알렉산더의 후손으로 인정받을 때 마케도니아 지역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근거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서부 개척자들을 영웅시하고 로마 제국의 건축물을 본따 국회의사당을 만들고 의사당 내부에 미국 건국의 영웅들 및 인디언과의 화해 장면을 조각해놓은 것도, 인디언의 땅을 빼앗아 세운 나라라는 사실을 지우고 마치 미국이 로마 제국처럼 역사가 오래 되었으며 인디언과의 조화로운 융합으로 태어난 나라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건국을 정당화하기 위함이다. 8. 토지 경작 농사를 짓는다는 것 역시 그 땅을 소유할 자격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땅에 대한 도덕적 소유권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유럽 사회에는 농경 생활은 선하고 정상이며 유목 생활은 악하고 비정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따라서 수렵 채집 생활에 머물렀던 원주민은 땅을 소유할 자격이 없다고 간주되었던 것이다. 신생국 이스라엘의 키부츠도 결국 빼앗은 땅에 사람을 거주시키고 농사를 짓게 할 효과적인 방안이었으며, 광활한 대륙 오스트레일리아를 차지한 영국계 백인들은 경작할 수 없는 내륙의 황무지가 영국계 백인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소유권이 흔들리지나 않을까 불안에 떨어야 했다. 9. 피정복민 말살하기 한 민족을 계획적으로 말살하는 제노사이드는 인류 역사에서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상적인 현상이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터키의 아르메니아, 그리스, 쿠르드 족 말살, 미국의 인디언 말살처럼 물리적인 말살이 있는가 하면, 그리스가 자국 내의 마케도니아 인이나 터키 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슬라브계 그리스 인’, ‘이슬람계 그리스 인’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말살하는 것처럼 흡수 동화 정책에 의한 말살도 있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면서 내선일체 사상으로 한국민의 민족성을 말살하려 한 것도 여기에 속한다. 10. 자국민 이주하기 군사적으로 정복했다 하더라도 정복한 땅에 자국민을 이주시키는 것은 큰 문제였다. 그냥 빈 땅으로 놔두거나 원주민을 그대로 살게 하면 소유권에 틈이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에 터키 인을 강제 이주시킨 것이나, 식민지 시대 영국이 오스트레일리아나 북아메리카에 이주할 사람이 없어서 죄수들을 이주시켰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와 북아메리카는 그 광활한 땅으로 인해 인종 갈등을 겪게 되는데, 그것도 다 자국민 이주라는 어려운 문제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그 광활한 땅을 영국계 백인으로만 채울 수 없어서 세계 각지의 이주자들을 받아들인 결과, 전체 인구에서 영국계 백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던 것이다. 인종 갈등은 이들 대륙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었고, 애초의 정복자이며 땅의 주인임을 자처했던 영국계 백인의 지위가 흔들림으로써 다시 이들 대륙의 소유권이 아일랜드 인, 독일인, 아프리카 인, 혹은 아시아 인 등 기타 다른 민족에게 넘어가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 땅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 말하다 - 이 책은 ‘정복’이라는 역사적 현상을 광범위한 문헌과 현재 정세에 기반하여 규명해낸 엄격한 학문적 성과물로, 가치판단이 개입된 수사나 선동과는 거리를 둔다. 다시 말하면, 물론 침략의 잔인함과 침략자가 내세우는 구실의 억지스러움을 말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새삼스럽게) 고발한다거나 하는 것은 이 책의 중심 내용이 아니다. 이 책은 정복의 역사적 현상을 있는 그대로 규명하고, 그럼으로써 현재 발칸 반도,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땅을 둘러싼 분쟁이 얼마나 그 근거가 희박한가를 보여준다. 결국 모든 집단(민족)은 지금 현재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영원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인류의 역사는 인류 이동의 역사이며, 한 사회가 다른 사회를 끊임없이 밀어낸 역사인 것이다. 단일 민족의 단일 국가라는 것은 민족주의자들이 믿고 싶어하는 환상에 불과한 것이며, 실제로는 위에서 말한 ‘정복의 10가지 법칙’을 통해 오랜 세월 만들어진 역사일 뿐이다. - 그렇다면 단일 민족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우리 민족은? 물론 당나라, 원나라, 명나라, 왜나라 등과 어떻게든 피가 섞여왔겠지만, 그래도 ‘소수 민족’이라 불릴 이(? 민족이 이 땅에는 없는 것은 사실 아닌가? 참고로, 이 책 7장 <이야기 만들기>에 ‘독립국 한국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저자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합병하면서 든 구실 중 하나가 일본과 한국은 조상이 같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1883년 한국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로 볼 때 약 414년경에 일본이 한국을 정복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해방 후 한국인은 자신들이 독립 민족임을 열렬히 선포하고, ‘보다 강력한 이야기로 그 주장을 뒷받침했다.’ 최근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로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가 기원전 5천 년에서 만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것은 일본의 유적지보다 훨씬 오래되었음은 물론, 중국의 유적지에 맞먹는 것이었다. 이로써 한국인은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연고를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까지도 아우른 위대한 민족임을 주장했다는 것이다.(271~272p) - 이 책은 세계 곳곳에서 늘 폭발의 불씨를 안고 있는 인종 갈등 역시 역사적으로 보면 땅을 둘러싼 소유권 분쟁의 일종임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다인종 사회인 오스트레일리아와 북아메리카. 이들 두 대륙은 영국계 백인이 처음 발견하고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영국계 백인만으로는 그 광활한 땅을 전부 다 채울 수 없다는 고민을 안고 있었다. 결국 소유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땅을 채우고 일을 해줄 타 인종을 받아들였고, 지금은 두 대륙에서 영국계 백인보다 오히려 동유럽, 남유럽, 아프리카, 아시아계의 타 인종이 더 많아짐으로써 영국계는 물론 백인 사회가 조만간 소수 민족으로 밀려날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비단 오스트레일리아와 북아메리카뿐만이 아니라 전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다. 수백 년 전 유럽의 백인 사회가 세계 각국으로 점령해 들어가 땅을 차지했다면, 현대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인구가 유럽으로 들어가 그들의 소유권을 잠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는 세계적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영국의 오스트레일리아 정복, 영국의 인도 정복, 미국의 아메리카 인디언 정복,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 일본의 아이누 족과 한국 정복,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 중국의 티베트 정복, 그리고 이스라엘 건국과 팔레스타인 인 몰아내기, 독일의 폴란드 땅 점령, 그리스 인과 터키 인과 마케도니아 인의 각축전, 인도네시아 정부의 자국민 강제 이주 등, 과거와 현대를 아울러 세계적인 정복과 점령, 분쟁의 사례를 들면서, 하나의 사례를 위에서 말한 10가지 ‘정복의 법칙’에 따라서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 저자는 말미에 ‘톨레랑스’의 정신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어쩌면 이러한 역사적 안목이 가져다주는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모든 사회는 다른 곳에 살다가 지금 살고 있는 땅으로 이주한 것이며, 게다가 미래에도 전체 혹은 일부가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이질적 구성원이 섞이고, 이질적 구성원의 수가 많아지면서 사회의 성격 자체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는 것. 따라서 어떤 사회도 현재 살고 있는 땅을 혼자서만 독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땅은 모든 사람의 고향으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우리 모두는 공통된 과거를 나누고 있으며, 미래도 함께 나눌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