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강원중학교와 춘천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삼미종합특수강과 삼미정공에서 6년 넘게 근무한 뒤 1988년 한겨레신문이 창간될 때 공채 1기 기자로 변신했다. 2004년 말에 한겨레신문에서 퇴직할 때까지 사회부 체육부 문화부 등 다양한 부서를 거쳤지만, 경제부에서 경제 기사를 가장 많이 썼다. 한겨레신문을 퇴직한 뒤에도 인터넷신문 등에서 일하며 주로 경제기사를 썼다. 그는 기자로 지낸 20여 년 동안 동서양의 고전을 꾸준히 탐독했다. 이제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쌓아온 다양한 경험과 동서양 고전을 섭렵하면서 축적한 인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를 집필하는 데 힘쓰고 있다.
가나안을 저주하는 노아(창세기 9장) 노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셈, 함, 야펫이었다. 포도 농사를 짓는 노아가 어느 날 포도주를 마시고 몹시 취해서 벌거벗은 채로 천막 안에 누워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처음 발견한 아들은 훗날 가나안 족의 조상이 되는 둘째 함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그대로 놔두고 밖으로 나가 형과 아우에게 자기가 본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셈과 야펫이 겉옷을 갖고 가서 아버지를 덮어드렸다. 둘은 천막 안에 들어갈 때 아버지의 벗은 몸을 보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 쳐서 들어갔다. 술이 깬 노아는 이 사실을 알고는 함과 그 후손이 될 가나안을 저주했다. “가나안은 저주 받아 그 형제들의 종이 될 것이다.” 노아는 홍수가 멎은 뒤로 350년을 더 살아 모두 957년을 살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뒤에 세 아들이 각기 자식을 낳아 여러 부족을 탄생시켰다.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은 가나안, 이집트, 에티오피아, 풋이라는 아들들을 두었다. 이 가운데 가나안은 맏아들 시돈을 비롯해 히타이트, 여부스, 아모리 등 여러 아들을 두었다. 이들이 말하자면 훗날 가나안 족을 이루는 씨족들의 시조다. --- p.36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창세기 32장) 야곱은 하인들에 이어 가족도 먼저 보냈다. 그런 다음 야영지에 홀로 남아 다시 기도했다. 그날 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야곱의 팔을 움켜잡았다. 야곱은 그 알 수 없는 괴한과 밤새 씨름을 했다. 씨름이 새벽까지 계속되자 상대는 야곱에게 날이 밝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며 자신을 놓아달라고 했다. 순간 야곱은 자신과 씨름을 하고 있는 상대가 천사라는 것을 알아챘다. 야곱은 자신에게 축복을 내려주기 전에는 절대로 놓아주지 않겠다며 버텼다. 천사는 야곱에게 이름이 무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고는 하느님과 겨루어 이겼으니, ‘속이는 자’라는 의미의 ‘야곱’에서 ‘이기는 자’라는 의미의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라고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이스라엘(야곱)은 자신이 하느님과 맞서고도 죽지 않고 살았다고 하여 그곳을 ‘하느님의 얼굴’이라는 뜻의 ‘프니엘’이라고 불렀다. --- p.66
학살당하는 베들레헴의 사내아이들(마태오복음 2장) 헤로데 대왕은 이민족 출신으로서 로마 황제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된 인물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정당성을 의심받던 헤로데 대왕으로서는 이스라엘의 메시아라는 예수의 탄생이 결코 달갑지 않았다. 그는 베들레헴으로 가는 동방 박사들에게 아기를 찾으면 알려달라고 하면서, 자기도 가서 경배 드리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댔다. 하지만 그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사실 헤로데 대왕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가 있는 곳을 알려주면 즉시 아기를 죽이려는 속셈이었다. 헤로데 대왕은 동방 박사들이 자기에게 오지 않고 곧장 돌아간 것을 알고 분노했다. 예수가 있는 곳을 정확히 알 수 없게 된 헤로데 대왕은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였다. --- p.368
안식일에 이삭을 따먹는 제자들(마르코복음 2장) 안식일에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밀밭을 지나갔다. 배가 고팠던 제자들은 지나가면서 밀 이삭을 잘라 먹었다. 그 모습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에게 따져 물었다. “당신 제자들은 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바리사이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융통성 없는 유대교 종파였다. 그들은 규율에 집착하며 자신들만이 의롭고 경건하다고 자만했다. 그런 그들의 눈에 예수의 제자들이 하는 행위는 ‘안식일에는 수확을 해서는 안 된다’는 율법을 어기는 불경한 짓이었던 것이다. 예수는 바라사이파 사람들에게 다윗이 굶주린 일행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사제 말고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나눠먹은 일화를 예로 들며 이렇게 말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오.”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는 회당에 갔다가 그곳에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만났다. 그곳에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가 병자를 고치는지를 유심히 지켜봤다. 예수가 병자를 고치면 안식일을 범한 죄로 고소하려 했던 것이다. 예수가 그 마음을 알고 무리를 둘러보며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과 나쁜 일을 하는 것, 사람을 죽이는 것과 살리는 것 중 어떤 게 옳소이까?”라고 물은 뒤 병자의 손을 고쳐주었다. --- p.392
간음한 여인과 예수(요한복음 8장) 예수가 성전에서 군중을 가르치고 있는데,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데리고 왔다. 그들은 간음한 자는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여야 한다며 예수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예수에게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번에야말로 예수를 옭아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자를 용서하라고 하면 율법을 어긴다고 비난받을 것이고,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면 사랑과 자비와 용서라는 예수 자신의 가르침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땅바닥에 무언가를 썼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대답을 재촉했다. 예수는 고개를 들고 “누구든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시오”라고 말하고는, 다시 몸을 굽혀 땅바닥에 무언가를 썼다. 예수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하나 그 자리를 떠났고 마침내 예수와 여자 둘만 남았다. 예수는 “이제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말하고는 여자를 돌려보냈다. --- p.418
군중 앞에 선 예수 (요한복음 19장, 루카복음 23장, 마르코복음 15장, 마태오복음 27장) 빌라도 총독은 예수에게 죄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사제와 원로들을 포함한 이스라엘 기득권층이 예수를 눈엣가시로 여겨 제거하고자 하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예수를 풀어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죽이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예수를 놓아줄 기회를 찾던 빌라도 총독은 파스카 축제 때에는 군중이 원하는 죄수 한 명을 풀어주는 관례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는 예수를 군중 앞에 데리고 와 말했다.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이자에게서 사형을 언도해야 할 죄목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자를 풀어주고자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중은 강도 바라빠를 사면하고 예수는 죽이라고 외쳤다. 그들은 스스로를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하는 예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로마 황제에 대한 반역이라며 빌라도 총독을 협박했다. 결국 빌라도 총독은 그들에게 굴복했다. 그는 물을 받아 손을 씻으며 군중에게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