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건넨 임신테스터를 보며 순간 영화나 드라마처럼 벅찬 환호와 기쁨의 조건반사가 나오지 않았다. 솔직한 감정은 당장 뭔가를 해야 하는데 떠오르지 않아 당황스러웠다.내가 뛸 듯 기뻐하지 않아 아내가 서운했을까? 사람이 살며 누구나 처음 겪는 순간을 맞이했고 솔직히 난 마흔 넘게 살면서 있을 수도 있는 이 순간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하지만 난 ‘아버지’가 된 것이다. ---「두 개의 선」중에서
나만의 마일리지를 쌓는다. 아내에게 제공하는 맛있는 요리, 청소, 설거지, 빨래, 족욕 서비스, 마사지, 재활용 버리기 등의 헌신을 통해 차곡차곡 쌓이는 마일리지. 그렇게 쌓이는 마일리지로 친구들과 치맥, 스크린 골프 따위를 즐길 수 있다. ---「마일리지」중에서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 모두 정상이란다. 술, 담배…… 합법적인 못된 짓은 전부 하며 대사증후군으로 살아가는 마흔셋 아빠로서 사실 두려웠다. 감사했고 곧 주책없이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 같았다. ---「10+10」중에서
임신한 아내의 몸무게 - 아기의 몸무게 ≠ 임신 전 아내 몸무게 ---「풀 수 없는 수학」중에서
좋지만 이상하고, 기쁘지만 계속 손을 대긴 무서운 듯하고, 경이롭지만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지만 손을 떼고 싶어도 뗄 수 없는, 아주 충격적이지만 놀랍고, 불편한 듯하면서도 신비한 움직임이다. 아내의 뱃속에서 커다란 잉어 같은 게 파닥거리는 느낌. ---「태동」중에서
한두 잔 마신 술이 어느새 자제력을 잃었고 난 만취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아내의 임신 이후 절제된(?) 삶을 살아내느라 출구가 없었다. 아내와 한바탕할 각오로 마신 술이었다. 아내의 잔소리나 버럭 사자후를 각오한 나는 순간 술이 깨어 버렸다. 불 꺼진 집, 아내는 불룩한 배로 돌아누운 채 잠들어 있었다. 옆에는 서러워서 흘린 눈물을 닦았을 휴지 뭉치가 수북하고, 뭉친 어깨에는 내 안마를 대신하는 찜질팩이 둘러져 있었다. 뜨거운 한여름에 불룩한 배로 하루 종일 혼자 보냈을 아내는 그래도 먹어야 하기에 혼자 밥을 챙겨 먹었을 것이다. 아내야말로 출구 없는 절제된 생활에 힘겨웠을 것이고 서러웠을 것이다. 미안했다. 내 새끼를 가진 아내를 챙기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내가 울었다」중에서
빨갛고 젖은 머리카락에 얼굴에는 하얀 피지가 잔뜩 묻은 아기. 낯설 테고 차가울 공기에 눈을 찌푸린 이 아기가 내 아들이었다. 실로 경이로운 순간 난 울지 않을 준비만 했지 어떤 말과 행동으로 으뜸이를 환영해야 할지 몰랐다. ---「8시 31분」중에서
아들이 자라 살아갈 미래는 좀 더 나은 세상이어야 할 텐데. 그런 고뇌에 차 있을 무렵 으뜸이가 칭얼대기 시작했고 난 으뜸이의 똥기저귀를 갈고 있었다.---「나는 전설이다」중에서
내 아기는 예쁘다. 정말 예뻐서 미칠 것 같지만…… 그러나 힘들다. 정말 힘들고 보통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좀 쉽게 말했던 것 같다. 예쁘기에 감내해야 하는 힘든 일이라고. 하지만 예쁜 것과 힘든 것은 따로 분리해야 하는 다른 문제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추석 연휴에 다녀간 부모님과 친척보다 연휴의 마지막 날 오신 베이비시터 이모가 가장 반가웠다. ---「솔직히 말한다면……」중에서
내가 ‘육아’라는 단어를 사전에 기술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육아: 아기 아빠의 경우 원만한 대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으며 아기 엄마의 등쌀에 금주 금연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계기가 된다. ---「사전적 의미에 관하여」중에서
뜸하던 후배가 카톡으로 말했다.
형: 보니까 저도 빨리 장가 가서 아기 낳고 싶어요.
나: 왜?
후배: 네? 형 사진 보니까 좋아 보여서요.
나: 뭐가? 정확히 어디가?
후배: …….
나: 그러니까 어느 부분이 좋아 보이냐고?!!
후배: 역시 육아는 힘든가 봐요. ㅠㅠ
나: 아는 새끼가 그래?!! ---「활자의 오해」중에서
우리 마누라의 논리에 아들 때문이라는 수식을 더하면 난 반론할 수 없었고 내 모든 권리는 박탈당해야만 했다. 인간은 남자, 여자, 아이 엄마로 구분된다. 그리고 난 아이 엄마를 독재자라고도 부른다. ---「우리 집 독재자」중에서
“아……바……아바빠……아빠……아……아빠.”
분명 이 녀석은 아빠라 말했고 며칠간 주문을 외우듯 ‘아빠’라 말하며 서운한 엄마의 염장을 지르고 있었다. 곧 ‘엄마’라고 하겠지, 라며 가증스런 위로를 한 나는 아내에게 짜릿한 승리감과 우월감에 ‘꼬소함’까지 느끼고 있었다.
---「아빠라 말해 버린 아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