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랑케 석관 덮개의 비밀
우리는 이런 정황 속에서 팔렝케 석관 덮개의 형상을 연구해야 했다. 중앙의 그림은 대니켄의 우주인도, 코트렐의 물의 신도 아니었다. 린다 쉴리의 주장대로 죽음의 입구로 떨어지는 모습으로 묘사된 파칼 왕 자신을 나타낸 비문이라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석관 덮개에 쓰인 상형문자 ‘오크 베(och beh)’는 “그가 길로 들어선다”라는 뜻이다. 그녀는 여기서 길이라는 것은 은하수를 나타내며 마야인들은 이를 하얀 길이라는 의미의 삭 베(sak beh)라고 불렀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추론 너머에는 십자형 모양의 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와 나무에 핀 꽃은 커다란 케이폭나무를 상징하며, 마야에게 케이폭나무는 생명의 나무를 의미한다.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나무가 지구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은 마야인들의 신념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마야인들만이 그렇게 믿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거의 보편적인 믿음이었다. 실제로 지구의 상대적인 위치, 즉, 하늘의 하계와 상계에 대한 마야인들의 믿음은 신기하게도 파칼이 살아 있을 당시의 독일계 스칸디나비아인들의 믿음을 떠올리게 한다. 독일의 신화에 지구 중앙에 있는 나무는 성스러운 서양물푸레나무인 위그드라실로 알려져 있다.
파칼 왕의 영혼이 오리온자리 근처의 어떤 별이나 행성으로 여행을 하기로 한 것이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는 생각은 결국 진실이었다. 대니켄이 팔렝케의 덮개가 우주선을 조종하고 있는 외계인을 의미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을 때는 너무 극단적인 생각을 취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덤 덮개 위의 이미지들을 신화로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별들로 향하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아마도 파칼의 영혼은 자신의 육체를 떠나 창조의 땅인 오리온자리의 별들로 날아갔을 것이다. ---p.175
세계 문명 발생의 공통점
중앙아메리카 문명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이 문명이 초기 이집트뿐만 아니라 중국과도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예를 들어, 중국과 마야 양쪽 모두 비취를 대단히 좋아한다. 양쪽 문화에서 이 보석은 부장품으로 이용되었다. 부장품으로 사용했다는 것 자체는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양쪽 문화 모두 죽은 자의 입에 비취 구슬을 넣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충분히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것뿐만 아니라 죽은 마야의 왕에게 비취 마스크를 씌웠던 관습은 중국 황제들이 비취 옷을 입고 매장되었던 사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비슷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마야가 사용한 요일의 이름들을 보면 중국과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사용된 음력 날짜의 이름과 동류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월식과 일식을 계산하기 위해 마야가 사용한 방법이 BC 200년에서 AD 200년까지 존재한 한(漢)나라의 중국인이 사용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테오티와칸과 그 외의 다른 장소들에서 발견된 많은 조각상들은 신기하게도 중국인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고학적으로 아시아 출처 문화 유물은 단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두 문화가 서로 교류를 했다고 가정했을 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또 있다. 마야가 아직 청동기시대로, 바퀴를 발명하지 못했을 때, 중국은 이미 어디에서나 바퀴달린 마차를 이용하고 있었고, 청동이 아닌 철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두 나라가 서로 문화적으로 교류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대양을 건넌 문화적 접촉이 없었을 것이라는 고고학자들의 회의론이 점점 확고해졌다. 하지만 정말 그들의 생각이 맞는 것일까? ---p.355
오리온 숭배 사상과 윤회의 믿음
컴퓨터를 통해 당시의 하지에 스톤헨지의 위도를 고려했을 때, 오리온자리가 태양과 동시에 태양의 주변에서 떠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시리우스보다는 태양에 가깝게 떠오른 오리온자리가 옥수수 신 오시리스의 부활을 상징했다. 영국 남부에서는 이집트나 멕시코와는 달리 석기시대부터 이미 밀과 다른 곡물들이 재배되고 있었다. 때문에 오리온은 영국의 옥수수 신의 부활과도 관계가 있다. 하지만 영국의 옥수수 신의 이름은 시간의 흐름 속에 잊혀졌다. 윌트셔에 있는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톤버러에 있는 헨지 유적의 위치는 이것이 전국에 걸친 사상이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재미있는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어떻게 오리온 숭배 사상이 이집트와 멕시코 그리고 영국의 문화에서 그렇게 현저하게 나타날 수 있었을까? 심지어 우리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는 각각의 나라에 살던 사람들 간의 직접적인 소통도 없었던 시기에 말이다. 해양 교류의 가능성은 잠시 젖혀 두고, 어떻게 동시대도 아닌 시기에 먼 거리에 살던 사람들이 오리온에 대한 유사한 생각을 가질 수 있었는가를 설명해줄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윤회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윤회를 믿고 있다. 전 세계의 모든 인구를 따져보면, 아마도 믿지 않는 사람보다 믿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윤회에 대한 믿음이 널리 퍼져있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육체에서 분리되어 만들어지는 영혼이 단 한 번만 육체를 부여받을 수 있으며, 육체의 행동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한다는 것은 불공평한 생각이다. 그러나 만일 윤회론자들이 믿는 것처럼 우리가 여러 번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오히려 그 편이 더 공정하다고 할 수 있다.---p.373
아틀란티스의 전설
플라톤은 이 모든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글을 썼다. 따라서 그는 과거사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자가 아니라 주변에서 일어난 정치적인 상황을 날카롭게 인식한 사람이었다. 그리스 문명에 대한 페르시아의 위협은 그에게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그는 순환되는 역사에 대한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 기억의 저편에 있던 아틀란티스 전설을 글로 썼던 것이다. 아테네인들은 아틀란티스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시작으로 마라톤과 살라미스 전투에서 페르시아를 무찔렀다.
어떤 측면에서 아트란티스에 대한 이야기는 그 시대의 하나의 비유였을지도 모른다. 또한 사악한 페르시아 제국은 감히 그리스와 이집트를 침범했던 아틀란티스와 같은 운명에 처해질 것이 분명하다는 예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이것이 다가 아니다. 왜냐하면 사이스의 성직자가 사실을 이야기한 것이고 역사가 스스로 반복되는 것이라면 이것은 아마도 플라톤이 살던 시대 역시 종말을 향해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야 족들처럼, 그리스인 역시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 때문에 플라톤에게 있어서 이것은 아주 중대한 문제였다. ---p.286
마야의 예언, 2012년 12월 21일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예수의 예언이 실제로 오리온의 팔 위에 있는 성문이 현대의 끝을 알린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세기의 끝에 대한 마야의 예언이 성문, 즉 이 경우에는 궁수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별과 연관이 있다는 것 역시 단순한 우연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지구 변화가 예측되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한, 적어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증거들을 종합하면 장주기의 마야 달력의 목적이 “태양이 동지에 남쪽 성문과 일직선을 이루는 날”을 표시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달력이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 이 날은 약속된 운명의 날이라 여겨진다. 그 운명이 단순한 지각 변동일지 또는 새로운 세계 질서가 나타나기 전 잠시 동안 일어나는 혼란일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외계에서 지구를 방문한 지혜로운 영혼들이 준 달력을 인정한다면 AD 2012년 12월 22일은 그들이 돌아오기로 계획한 날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날을 일기장에 운명의 날로 표시해 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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