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경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알타미라 벽화』 『잔혹한 연애사』 『여우비 간다』, 평론집으로 『가면적 세계와의 불화』가 있다. 현재 부산작가회의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부경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20세기 이후에 발달한 의학은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라는 말을 구체화하는 토대가 되었다. 19세기 메를로퐁티 등의 신체현상학자들이 주장하던 심신일원론, 즉 인간의 의식이 감각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말은 20세기 이후 의학에 의해 입증되었다. 데카르트 이후 근대까지, 신체의 현상을 하위 개념으로 두고 인류의 정신사를 구축해왔던 것에 대한 전복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신체의 감각적 지각이 개인의 의식을 만들고, 이것이 사회 이데올로기와 문화적 상징체계로 연결된다는 사실은 그동안 신체 담론과 정신 담론으로 분리되어 다뤄졌던 모든 진리를 재검토할 필요성과 연결된다. 신체의 현상으로 인한 감각의 의식화와 사회화 과정은 인간의 존재와 실존의 의미가 생물학적 존재성과 사회학적 존재성의 연계 속에서 생성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감각의 새로운 진리에도 불구하고, 시 연구에서 신체 담론과 정신 담론은 분리되어 그 의미가 규정된다. 시 연구에서 후각적 감각은 사회화와 연계되지 못하고 본능적 감각으로만 규정되었다. 신체의 감각적 지각을 외부의 현상에 반응하는 본능으로만 규정하여 시적 의미를 찾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본능이 생물학적 반응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정신, 사회·문화의 근원이 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시 연구에서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과는 달리 거의 모든 담론에서 제외되어왔다. 후각 이미지를 연구할 필요성은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이 자명하다.
다른 감각과는 달리 후각은 생물학적 존재성과 사회학적 존재성, 정신적인 실존성을 두루 반영하고 있는 감각이라 할 수 있다. 다른 감각들도 이러한 존재성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후각만큼 두 영역을 폭넓게 반영하고 있는 감각은 없다. 시에서도 후각적 감각은 생물학적 존재성과 사회학적 존재성을 두루 표출하면서 우리의 사회·문화적인 사상과 행동 체계를 많이 반영하고 있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1930년대 시에 나타나는 후각 이미지의 사회·문화적인 의미를 연구한 것으로, 신체현상학 이론과 사회·문화적인 후각 이론을 융합한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30년대는 일제의 파시즘적 정책이 노골화되는 시기였으므로 우리 민족에게는 그 어떤 때보다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대였다. 이런 시대일수록 시각과 청각과 같은 이성적인 감각보다는 후각과 같은 본능적 감각이 인간의 심연의 감춰진 개인과 사회의 실존적 문제를 더 많이 반영하고 있다. 1930년대는 다른 시대와 달리 다양한 후각적 감각이 나타나는 시기이다. 인간이나 종족으로서의 생명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인지 자기 보존 욕구를 드러내는 생물학적 존재성뿐만 아니라, 민족 계급 간의 권력 투쟁이나 문화적 혼종을 겪는 정치, 문화 등의 심미적 후각적 감각도 나타난다. 생명이 위협받는 불안한 시대일수록 후각적 감각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2부는 해방 이후 시에 나타난 후각 이미지의 사회·문화적인 의미를 각 연대별로 연구한 것으로, 각종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이다. 학위 논문을 쓴 이후에도 한국시사에서 시의 후각적 관점 연구는 여전히 불모지로 남아 있어, 이를 지속적으로 연구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20세기의 한국 현대시를 후각적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1950년대, 1960~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를 1930년대와 같은 연구방법론으로 살펴본 것이 2부의 논문들이다. 2부의 논문을 통해서 후각적 의식은 같은 문제가 동일한 냄새로 의식화되기도 하고, 한 시대에만 국한되는 특징적 냄새로 의식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1930년대와 1950년대와 같이 인간으로서의 생명적 위기가 명확할 때도 생물학적 존재성의 문제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90년대와 같이 지나치게 사회학적 존재를 추구하는 사회 현실 속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질문명의 발달이 일제강점기나 6·25에 주로 나타나는 생물학적 존재성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