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은 뒤따라오는 제자들에게로 몸을 돌려 물으셨습니다. “너는 도대체 왜 나를 따라오느냐? 너는 나에게 무엇을 구하려 하느냐? 네가 찾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고 계십니다. 이것은 오늘 예수님 앞에 나온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왜 교회에 나왔는가? 왜 예수님을 믿는가? 왜 예배드리는가?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찾으려고 주님 앞에 무릎 꿇는 것인가?” 하나님이 나를 향해 묻고계신 것입니다.
- 신앙은 지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성적인 물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과 씨름하다 보면 이성적 지식을 뛰어넘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계시의 지식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잘 모릅니다. 나중에 되돌아보면, ‘내가 어떻게 그런 마음을 품었을까?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됐지? 어떻게 예수님을 내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었을까?’ 하는 감격스러운 확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며 예수님의 의도를 아주 명백하게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 말고, 너희는 도대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가 나와 함께 있지 않았느냐?” 3인칭에서 2인칭으로 바꿔 다시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물음입니다. 어머니 신앙에서 내 신앙으로, 아버지의 신앙에서 내 신앙으로, 남편이나 아내의 신앙에서 내 신앙으로, 친구의 신앙에서 내 신앙으로 바뀌어야 그때부터 내 삶에 역동적인 믿음의 힘과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 삶의 내용만 좋아하고 그것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그것은 참된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 내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와 축복은 좋아하지만 하나님을 직접 만나려는 열망과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부족하지 않습니까?
- 제자들처럼,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따라가고 마지막까지 옆에 있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전혀 딴 생각을 하면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기도의 목적이 내 축복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 기도는 무언가 잘못될 염려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복에 복을 더해 주실 거라는 단순한 마음으로만 헌금을 한다면, 내 헌금은 우상에게 바치는 재물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 신앙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부자가 되지 않아도 신앙생활을 끝까지 할 수 있을까요? 건강하다가 질병이 들어도 내 신앙이 멈추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만약 많이 가져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세상에서 내 힘이 높아져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만족할 수 있다면 이것은 가룟 유다와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 예수님이 주신 선물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좋아서,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이 좋아서, 예수님 이 품으신 꿈과 생각과 그 말씀이 좋아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이것은 내가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