뻬떼 아담 박사는 서른여덟 살의 텔레비전 방송국 피디(PD)이다. 2년 전 삐떼 엄마를 몹쓸 병으로 잃고 난 뒤부터는 아들과 장난을 치지도 않았고, 재미나게 지내지도 않았다. 무뚝뚝한 아빠였고, 언제나 일만 했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조사하고, 회의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계산하고, 게다가 산보도 해야 했다.
아담 박사는 매일 저녁 늦게야 데데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돌아왔다. 그러고도 모자라 자기 방에서 또 일을 했다. 게다가 하지 않으면 좋을 말을 삐떼에게 했다. 아들이 작은 실수라도 저지르면 바로 꾸지람을 했다. ‘잊어버렸구나, 망가뜨렸어, 안 씻었지? 성적이 떨어졌구나, 못 알아들었니? 대체 떨어진 이유가 뭐야?’ 이렇게 야단을 쳤다. -p.8
하지만 아무리 자신이 아니라고 우겨도, 이게 자기 자신이라는 건 틀림없었다. 이불 위에 놓인 울룩불룩한 근육의 털북숭이 팔 옆에 찢어진 헝겊 조각이 보였다. 헝겊 조각의 색과 그림이 삐떼 잠옷과 비슷했다. 똑같은 오렌지색이었다. 게다가 헝겊 조각 위에는 하얀 단추가 놓여 있었다. 삐떼는 물끄러미 보고 또 보았다. 자기 잠옷 조각이라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2주 전에 새로 산, 한 번도 오줌에 젖지 않은 멋진 새 잠옷이었다(엄마가 돌아가신 후부터 삐떼는 유감스럽게도 밤에 가끔 오줌을 쌌다). 윗도리와 아랫도리 모두 찢겨져 있었다. 잠옷이 이미 다 찢어져서 그의 몸에서 떨어져나가 있었다. 밤에 찢어진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순식간에 몸이 커진 모양이었다. -p.12
“서두르는 사람은 늦어. 바라는 사람은 찾아내지.”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혼잣말로 이렇게 마무리했다.
“사과가 익기를 재촉할 필요는 없어.”
아담은 귀 기울여 듣느라 입을 약간 벌리고 있었다. 아담은 많은 것을 경험한 어른이었고, 심리학자이자 텔레비전 피디였다. 그는 교양 있고 이해력이 빠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는 이미 피곤해보였다. 처남이 중얼거리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삐떼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카즈메르 삼촌은 아빠가 자신을 그냥 좀 편하게 내버려두라고 말하고 싶어 했다. -p.20
“아니요, 아빠는 거의 웃지 않아요. 그리고 정확히 늘 이렇게 찌푸리고 있어요.”
삐떼가 말했다.
“내 머리카락이 왜 이래? 너, 머리카락을 어떻게 한 거야? 뽑았어? 어제는 지금보다 훨씬 숱이 많았는데…….”
아담은 아이의 벗겨져가는 정수리를 주의해서 바라보았다.
“머리카락? 그건 아빠 머리빗 속에 들어있겠죠!”
삐떼가 낄낄거렸다. 어른의 몸을 가지니 굉장히 힘이 세진 것처럼 느껴졌다.
“버릇없이 굴래?”
아빠가 가느다란 아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단호했다.
“너, 한 대 맞아야겠니? 나는 언제나 네 아빠야. 어떤 일이 일어나도 말이야. 안 그래?”
“당연히 아빠죠! 그런데 누가 그걸 믿겠냐고요?”
삐떼가 투덜거렸다. -p.52
“좋아, 그러면 너희들이 어떻게 얘기하는지 지금 말해 봐. 자, 너희 학교에 대해서 말해 봐. 선생님들과 반 친구들 이름이 뭐야?”
아담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종이와 펜을 꺼냈다.
삐떼가 무례하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봐요, 아빠는 내 친구들을 모르잖아요. 모르니까 지금 그럴 묻고 있죠.”
그러고 나서 삐떼는 아빠에게 누가 누구인지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하지만 이버니치 튄데에 대해서만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자기에게도 이버니치 튄데라는 이름을 가진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아빠한테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이버니치 튄데는 자기를 좋아하는 걸 모를 테니까! -p.67
아담은 불안해졌다. 문학에서도 아들에게 1점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삐떼는 언제나 이 과목을 잘했다. 그는 조심스레 선생님을 엿보았다. 선생님은 교탁 옆에 앉아 책을 읽고 계셨다.
아담은 클라리노 선생님을 조심하면서 책상 서랍에서 문학 책을 천천히 끌어당겼다. 흘끗거리며 책장을 넘겼다. 학생 때에도 이런 일은 해 본 적이 없었다. ‘톨디가 어디 있지?’ 20년 동안 커닝을 안 했는데, 커닝 하고 싶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톨디가 어디 있지? 찾았다. 3쪽… 어디 보자.’ 내용을 훑어보기로 했다. ‘키시펄루디 재단… 1846년…’ 그는 빠르게 읽었다. 하지만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
“삐떼!”
선생님의 목소리에 그는 깜짝 놀랐다.
“너 책상 아래에서 뭘 보는 거야? 가지고 나와!”
아담은 얼굴이 빨개졌다. 아주 오래 전에 이런 수치를 느꼈다. ‘싸다 싸. 어른이 커닝을 하다니…….’ 문학 교과서를 꺼내 가서 교탁 위에 내려놓았다.
선생님은 말없이 소년을 보았다. 오늘은 정말 아무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약한 아이가 왜 싸웠을까? 문학 우등생인 아이가 왜 커닝을 해야만 했을까?’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