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 마는 네 살 되던 해에 파리에 있는 악기 제작의 거장 에티엔 바틀로의 스튜디오에서 처음 첼로 레슨을 받았다. 당시 키 높이에 맞는 의자가 없어 전화번호부를 쌓아 놓고 앉아야 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조상의 나라인 중국과 어린 시절을 보낸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의 음악에 대한 탐험을 마친 직후 그가 돌아온 곳은 그가 자라 음악에 대한 첫 인상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다. 이 음반 속의 음악은 1900년 경 황금기인 '벨 에포크' 시절의 파리를 보여준다. 이곳이 햐오춘 마가 그토록 매혹되어서 한 번 보고싶어 짐을 싸 중국을 떠나게 했던 바로 그 파리이다. 이 옛 중국과 근대 파리의 혼합은 그의 아들에게 첼로를 연주하던 어느 날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는 다문화적인 세계를 선사했다. 요요 마가 여기에 녹음한 네 작품은 원래 바이올린을 위한 곡을 첼로로 편곡한 것이다. 이 곡들은 전설과 추억, 경험에 대한 가장 훌륭한 매개물인 음악을 통해, 여전히 그의 일부로 남아있는 어느 시대와 장소에 대한 그 자신의 애정을 불러온다.
19세기 말 파리는 새로 태어난 도시였다. 예술과 사상에 생동했을 뿐만 아니라 오스망 남작의 대도시 계획으로 새로운 얼굴로 다시 났다. 1889년부터 일반에 공개된 에펠탑 꼭대기에서 개선문으로부터 뻗어 나온 넓은 가로수 길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이 모네와 세잔의 파리요, 물랭 루즈와 레스토랑의 파리였다. 이곳이 미국으로 보내지기 전 자유의 여신상이 조각된 도시요, 루이 파스퇴르가 감염된 개에 물린 소년에게 새로운 백신을 시험한 곳이었다. 르누아르는 센 강둑에서 벌어진 선상 파티를 그렸으며, 쇠라는 여기서 바로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포착했다.
몽소가(街)에서 열리는 마들렌 르메르의 화요일 저녁 살롱에서는 카미유 생상스와 그의 제자 가브리엘 포레가 종종 피아노를 연주했고, 쥘 마스네도 이곳을 자주 들렀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근처에 있는 살 빌리에에서 어느 날 저녁 이 시대의 상징인 세자르 프랑크의 위대한 'A장조 소나타'를 들었다. 그는 음악이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우리 영혼의 깊은 신비를 일깨운다"고 썼다. 프루스트는 생상스나 포레의 음악과 더불어 프랑크의 소나타를 자신의 소설 속에서 다뤘다. 즉, 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가상의 작곡가 뱅튈을창조했고, 그에게 이와 같은 소나타를 작곡하게 한다.
이 음반은 두 곡의 소나타가 주축을 이룬다. 포레의 소나타는 1877년 작곡되었고, 새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 중 하나이자 그의 첫 대작이었다. 이는 젊은 날의 작품이기에, 충동적인 리듬의 몰아침과 풍부한 멜로디의 흐름이 살아있다. 프루스트가 묘사한 것처럼, "무한성이 펼쳐지는 듯하다." 이 곡의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우아함은 저류의 에너지를 감추고 있다. 이는 조용한 힘이 깃들인 음악이다. 생상스는 포레의 이 첫 성공작을 초연에서 듣고 다음과같은 평을 남겼다. "무슈 포레는 단 한번의 도약으로 위대한 거장들의 반열에 올라섰다."
1886년에 씌어진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바이올린을 위한 곡이었지만 폭 넓은 인기로 곧 첼로로 편곡되었다)는 벨 에포크의 기념비였다. 숙련된 순환적인 형식으로 네 개의 악장이 주기적인 악상으로 서로 얽혀 있고, 미묘한 상호 관계를 맺고 있는 이 곡에서 프루스트는 뱅튈이 작곡할 소나타의 원형을 발견했다. 악절은 사라졌다가, 뒤에 가서 돌아오고, 다시 변형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이 미니어처에서 자신의 전체 소설을 구성하는 본질을 발견했다. 소설에서 주제는 언급되었다가, 사라졌다가, 더 파헤칠 필요가 있을 때 돌아온다.) 특이한 3악장은 카덴차와 같은 레치타티보를 포함하고 있는데, 주제를 되짚었다가 마지막에 올 것을 미리 살펴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소나타 전체를 통해 들리는 두 악기의 주고받음 속에서 경탄할 솜씨를 찾아 볼 수 있다. 프루스트가 뱅튈의 소나타에 대해 적은 것은 프랑크의 소나타에도 작용할 수 있다. "세상이 시작될 때처럼 아직 지상에 그들 둘만 있는 듯하다."
'타이스' 중 '명상'의 멜로디는 시대를 알리는 신호이다. 마스네의 이 오페라는 노벨상 수장작가인 아나톨 프랑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프랑스는 프루스트 소설에 등장하는 베르고의 모델이기도 하다. 창녀인 타이스를 사랑해서 그녀를 교화시키는 수도승의 이야기인 이 프랑스의 소설은 처음에는 연재물로 출판되었는데, 1890년 이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마스네의 오페라는 4년 뒤에 나왔는데, 초연 당시 캘리포니아 출신 소프라노 시빌 샌더스의 젖가슴이 우연히 드러나 소동을 빚긴 했지만 소설만큼 히트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2막의 '명상'은 즉각 청중을 사로잡았다. 시간이 가면서 그저 살롱 음악으로 치부되었지만 이 곡은 여주인공의 개심(改心)을 묘사하는 지극히 진지한 음악으로 나긋나긋한 멜로디는 천천히 클라이맥스로 올라감에 따라 고결함과 유혹적인 성격 사이를 오고간다.
생상스는 프루스트가 젊었을 때 쓴 신문 기사의 주제이기도 했으며, 프루스트가 뱅튈에게 작곡하게 할 음악과 같은 곡을 지은 첫 작곡가였다. 1887년 작인 '아바네스' 이국적인 취향에 대한 19세기말의 유행과 스페인 음악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도취를 반영한다. 생상스의 '아바네스'(스페인어로 하바네라)는 10년 전 파리에 소개된 비제의 '카르멘'(첫날 밤 관객은 무심했지만) 못지 않게 유혹적이며, 오히려 더 넓은 감정적인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불같은 열정을 담고 있어 곧 비르투오소를 위한 소품이 되었다. 프루스트가 알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세계의 소리를 담은 그런 음악이다. 오늘날은 당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다시 듣기 위해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면서 얼마나 배를 주리면서 음악을 들었는지 알기 어렵다. 프루스트는 잠시 동안 '테아트로폰' 서비스에 가입했었는데, 덕분에 콘서트홀의 음악을 집에서 수화기로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오늘날에 살았더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몇 번이고 들을 수 있음에 기뻐했을 테고, 그렇게 해서 모든 비밀을 벗겨 내려고 했을 것이다. 뱅튈의 작품에 대해 그가 적은 문구는 오늘날 포레와 프랑크에게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 "나는 이 소나타가 내게 주는 모든 것을 연속해서 들음으로서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전체로서 이 곡을 소유할 수 없다. 이는 곧 인생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