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승현은 웃으며 하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때까지 자신이 회장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잘해 주는 이는 있었다.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자신을 싫어하다가 회장 아들이라는 걸 알고 쉽게 태도를 바꾸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몇 명 있었지만 그건 능구렁이 같은 중년 상사들이 전부였다. 그런데 자신과 비슷한 또래가 저러다니. 게다가 과감하게 상사의 엉덩이를 때리는 등 뒤에서 복수까지 하는 여자였다. 처음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승현은 웃음을 멈추고 커피를 마셨다. 역시 자신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한동안 멍청한 짓을 많이 해서 스스로도 좀 멍청해졌나 싶었는데. 승현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나 씨, 나랑 연애할래요?” “뭐라구요?” 하나가 처음으로 큰 소리를 냈다. 회사에선 무조건 목소리는 작게, 발음은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무난하게 보이기 위해. 하지만 방금 들은 말은 놀라고도 남을 것이었다. 이번엔 승현이 태연하게 말했다. “아, 계약 연애요.” “임승현 씨,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알아요?” “어이가 없겠죠.” 승현이 자신의 말을 가로채자 하나는 차를 마시며 승현을 째려봤다. 승현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엉망진창으로 하고 남한테 피해를 주는 놈이 회장 아들이라서 잘해 줬는데 갑자기 연애를 하자네? 그것도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계약 연애. 나 같아도 어이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잘 알면서 왜요?” 승현이 자세를 고쳐 느슨하게, 다소 건방지게 앉았다. “하나 씨, 회사 다니고 싶어요?” “그야 당연히…….” “돈 벌려고 다니는 거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