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가 없는 세계를 지양하는 나에게, 난이도가 정해져 있는 바위들은 내게 경계를 보여준다. 내가 노력하여 이 경계를 허물고 싶다. 성현이가 자상한 마음으로 바위에 대한 배려를 해주어 감사하다. 한마음 길은 처음 해보는 코스였지만 재미있었다. 바윗길은 억지로 낸 길도 있지만, 사람들의 뜻대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틀을 보여준다.”
--- pp.17~18
“나는 벅벅대며 스타트를 시작하였다. 선인에 자일을 걸고, 나는 탯줄에 매달려 유영을 하는 겁먹은 태아처럼 표범과 박쥐를 부유하였다. 나는 다시 모체에 귀환하여 자궁 속으로 돌아가 안착한 일을 해낸 존재로서의 나를 느낀다. 선인이라는 말. 선인이라는 말을 표출해 볼 수 있다는 기쁨. 그리고 표범, 박쥐 등에 대한 나의 행위들 그로서 충분하다. 그것으로서 충분하다.”
--- p.18
“등반을 한다는 것. 그것은 자유를 온 몸으로 즐기는 것이다. 위축된 근육을 자유롭게 이끌어내는 것과 압축된 정신을 활짝 펼쳐보는 것. 그런 것이 등반 속에는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 pp.33~34
“저녁을 먹고 나서는 낯설지만 편안함이 있는 바위 군들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즐기며, 밤엔 두런두런 모여앉아 신부님이 내려주셨다는 82도 짜리 포도 증류주를 마셔보았다. 맑은 밤공기를 흔드는 얘기꽃을 피우다 잠자리로 들었다. 밤에 총총한 북두칠성이 내 머리위에 떠있고 양쪽에 거대한 암봉을 병풍처럼 치고 떠있는 무수한 별빛을 이불삼아 비박을 하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보니 산 아래 바다는 온통 운무로 덮여 신선들이 머무는 자락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 pp.52~53
“산에 빠져들면서 나는 한사람의 여자이기 전에 한사람의 산사람이고 싶었다. 좀 더 힘이 세지고 싶었고, 좀 더 대담해지기를 바랐다. 나는 산 속에서 살다가 사라지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냥 산에만 가면 좋았다. 아니 산을 생각만 해도 좋았다. 그리고 산길을 걷듯이 묵묵히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p.58
“행복에 대한 내 구체적인 개념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 푸른 나무 잎새들이 하루 더 맑고, 뾰로롱 거리며 새들이 노래하고, 그래서 바라보는 내게 아름답게 보일는지 모르지만, 그 좋음을 바라보는 내게는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즐거움이라든가, 그러한 것을 들여다보는 그것 자체가 행복이 될 수 있을까?
나는 행복을 위해 태어나진 존재인가? 글쎄, 강하게 부딪혀오는 생각들이 있다. 행복. 중요한 것은 행복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그것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행복은 파랑새라고도 한다. 사람들은. 아니란다. 행복은 내 주변에 산재해 있다고 한다. 만화책 캔디. 그 주인공은 산다는 것은 멋이 있는 일이라고 한다. 자신은 존재에 대한 어떤 명확한 것. 어떠한 확실한 생각도 갖고 있질 않고 있다. 한 번도 나는 "그래, 살아있다는 것, 산다는 것은 멋있는 일이야"라고 말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왜 내가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하는가. 이유가 뭐란 말인가? 목적, 목적들 하지만 목적은 또 뭐란 말인가? 사람들이 부단히 뭘 되려고 하는 것 자체도 싫었으니. 자신은 아마도 밑뿌리서부터 흔들려온 나무였나 보다.”
--- pp.105~106
“어릴 때와 다르게 지금의 나는,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범주가 혈연이나 혼인에 의해서만 아니라 심리적인 관계에 기초하고 있음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물론이고 현재 내가 아주 좋아하거나 죽을 때 까지 함께하고 싶은 지인이나 친구들, 그리고 산을 함께 추구하면서 마음으로 좋아하는 산 선후배들도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다. 가족의 구성원으로 가족을 많이 사랑하지만, 개개인의 생활과 가치를 펼치는데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개인주의의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고 나 자신을 스스로 평가해 본다.”
--- pp.128~129
“산엘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 산 생각이 간절했다. 도봉과 선인. 그리고 석굴, 그 속의 포근함, 사방이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석굴의 야경. 바람소리. 별들. 까만 어둠의 그리움. 토요일 밤 야영을 들어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소리. 내 자신의 몽매함. 산 친구들이 보고프다. 그들의 얼굴이 그립다. 그리고 진정으로 내가 그리는 이를 보고프다. 나는 진실로 그를 생각하고 있는 걸까? 이 기타소리처럼 가슴이 애달파 나는 콧잔등이 시큰거리려 한다.”
--- p.147
산은 설레게 하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그 품에 있게 하려는지 나를 항상 한숨쉬게 한다. 산이 어떤 것인가를 놓고 나는 해부해보려 하지 않았다. 왜 산에 오르는가라는 질문들이나 나 역시 수없이 던진 질문들도 이젠 소용없다. 심장을 흔드는 것. 수없이 가슴앓이를 하게 하는 것. 그 속에서 쉴 새 없이 즐겁고 기쁘고 좋은 것. 아쉽게 하는 것. 머릿속을 청정하게 하고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 산은 이러한 것이다. 내게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함이 있음을 알아챈 어릴 적 그때부터 나는 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1999년 4월 29일 이후 현옥이의 사고 소식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도 가슴 아프게 그녀가 부러웠다. 93년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등정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둘째아이를 출산 한 이듬해 무렵이었다. 엄마로서의 나는 아이들이 무척 소중하고, 정말 가슴속에 아이들이지만 에베레스트 소식은 가슴이 저미도록 산에 가고프게 만든 또 하나의 일이었다. 이러한 것이 모두 욕심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생활 속에 존재해야 하고, 두 아이의 엄마로써 나를 항상 채근하고 불편하게 할 남편의 아내로서, 어린이들을 돌보는 교사로, 교사들을 다독거려야 하는 원장으로서 나는 잘해야 한다. 이것도 욕심이다.”
--- pp.305~306
“산에서 만나 함께 자일을 묶는다는 것으로 형제이상의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산악인들이 아닌가 한다. 산을 마음에 품고 산을 추구하다 사라진 아름다운 별들이 아리게 다가온다.”
--- p.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