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는 죽음이 세계 어느 곳에서보다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덜 슬픈 일일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수없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부모님을 잃는다는 것, 그토록 사랑하던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어디서 태어났는가를 떠나 똑같이 슬프고 괴로운 일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죽음이 우리에게 매우 일찍부터 무척 자주 찾아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노심초사한다. 태아가 기형일 경우 태어나지도 못한 채 산모와 함께 죽게 될 수도 있다. 다행히 태어났다 하더라도, 우리가 마시는 비위생적인 물 때문에, 잠든 사이에 모기에 물려서, 달리 줄 것이 없어 먹인 모유 때문에 아이들이 너무 일찍 죽어 간다. 또는 면역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을 때 폐결핵이나 콜레라가 번지기 시작하면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속절없이 목숨을 잃는다. 예방이라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주사 한두 번으로 피할 수 있는 병 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흔하다고 해서 죽음이 우리에게 슬프지 않은 일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죽음은 절대로 우리에게 덜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본 사람은 안다. 그 사람을 잃으면 그것으로 시련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시련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그 시련은, 사랑했던 사람들의 빈자리를 끌어안은 채 어떻게든 살아 나가야 하는 ‘삶’이라는 시련이다. (6장, pp. 80-81)
나는 닭 요리를 주문했고 모팻은 쇠고기를 주문했다. 접시 뚜껑을 열자, 가슴이 내려앉았다. 호텔 측에서는 이 방에 모팻과 나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족이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어떻게 지구 한쪽 편에는 이렇게 많은 것들이 있고 다른 편에는 그렇게 아무것도 없을 수 있을까?’ 나는 너무 혼란스러워 침대에 쓰러져 흐느꼈다. 그러자 모팻이 이곳에 온 이유를 상기시켰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고통당하고 있는지를 미국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잖아.” 그리고 어서 음식을 먹도록 설득했다. “먹지 않으면 당신은 더 약해질 거고, 그러면 말할 힘이 없을 거야. 몸이 안 좋아서 말할 힘이 없어진다면 우리가 여기 있을 이유도 없잖아.” 이것은 남편이 내게 해준 가장 진솔하고 다정한 말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여전히 의문이 솟구쳤다. 잠비아의 지도자들과 아프리카 다른 국가들의 지도자들에게 화가 났다. ‘정치인들은 내가 오기 전에 이미 이곳에 와 봤을 거잖아. 우리가 그토록 가난에 찌들었는데 어떻게 밤에 잠이 오지? 얼마나 많은 우리 몫으로 그들의 부정한 부를 살찌우고 있는 거지? 인간이 어떻게 자기 국민들은 고통받게 내버려 두고 자기 잇속만 챙길 수 있지? 더 나은 삶이 가능한 걸 알면서도…. 왜 사람들이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거지?’ (19장, pp. 273-274)
나의 생각은 아프리카의 동포들에서 서구 사람들에게로 옮겨졌다. ‘그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만일 그들이 알았더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매 순간을 살 곳도, 먹을 것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과연 침묵할 수 있었을까? 뭔가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아무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던 건가? 아니, 그냥 한 번 이야기하고 말 것이 아니라 말하고 또 말해서, 그들이 움직일 때까지 반복해야 하는 것 아닐까?’ 바로 그때, 거기서 깨달았다. 주님께서 여기로 나를 인도하신 이유는 바로 두 세계를 만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19장, p. 274)
이 땅에서의 시간이 다할 때, 우리의 삶은 과연 무엇으로 가치 매겨 질까?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았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축적했는지로 가늠될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사는 동안 무엇을 이루었는지, 크든 작 든 어떤 변화를 이루어 내기로 선택했는지, 그리고 우리의 형제자매 중 가장 작은 자들에게 어떻게 반응했는지로 가늠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또한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지 세심하게 선택해야 한다.
어떤 열정이 당신의 심장을 뜨겁게 하든, 자신과 주변인들에게 어떤 약속을 하였든, 그것을 추구하는 데 또 하루의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간이 아직 당신 편이라고 희망하며 스스로를 재촉해야 한 다. 시간은 자꾸만 우리에게서 멀어져 간다.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 지를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의 말에 귀기울여야 한다. 시간이 흘러 우 리 모두 이 세상을 떠나고, 손자 손녀들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떻게 살다 가셨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기를 원하는가? 어서 함께 일어나 영원으로 기억될 걸음을 내디디자. (에필로그, p.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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