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가 서동경 때문에 부서졌는데, 수리비가 1억하고도 8천만 원씩이나 청구가 됐더란 말이지.” 동경은 1억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부터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태윤과 개인적인 대화를 이런 식으로 처음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멀리서 보는 것만 해도 행복해 마지않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앞에 선 그는 지옥에서 그녀를 잡으러 온 사신과도 같았다. 청구서를 나른하게 손가락 사이에 끼워 들고 그녀의 눈앞에 흔들고 있는 태윤이 짓궂었다. 아주 천천히 청구서를 흔들다 보니 그녀에게도 종이에 적힌 어마어마한 수의 동그라미가 시선을 끌었다. 땅을 짚고 선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가진 돈을 모조리 끌어 모으고 퇴직금까지 정산해도 한참 모자란 금액이었다. “왜? 아직도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 너 설마, 아직도 내가 네 꿈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녀가 나부끼는 종이를 따라 홀린 듯 대답했다. “……그런 거 같아요.” 태윤이 험악하게 현실임을 일깨웠다. “너 정말 죽을래?” 차라리 죽고 싶네요. 그는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와 친절하게 눈높이까지 맞추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경에게만 들리는 그 목소리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대답해.” “죄송합니다. 그날은 정말……, 실수였어요.” 솔직히 그녀의 대답이 진심이라고 한들 태윤이 믿어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태윤은 동경의 예상에서 한 치도 빗나가지 않고 있는 대로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그녀의 대답을 곱씹고 곱씹었다. 동경은 바닥에 머리를 못 박은 채, 가만히 처분만 기다렸다. “실수? 억울하다고 생각하나 본데, 그럼 억울하지 않게 기회를 주지. 딱 일주일 안에 내 머릿속에 기억된 네 행동과 말을 모두 잊을 수 있게 해 봐. 아니면 넌 아웃.” “네?” “싫으면 싫다고 말해.” “아, 아니에요.” 태윤의 제안이 황당했다.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잊게 하라는 거야? 할 수만 있다면 그의 두개골을 열어 깨끗이 씻어 주고 싶었다. 표백제도 풀고 중성세제도 푼 따뜻한 물에 뇌를 뽀독뽀독 소리가 나도록 씻으면 완벽할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기억하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란 말인지, 억지도 저런 억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못 하겠다는 말로 그의 분노를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의 인생에서 최고로 긴 일주일이 될 것 같았다. “지금 이 시간을 기준으로 딱 일주일.” 태윤은 동경에게 절대 하지 못할 숙제를 내어 주고는 발걸음도 가볍게 사라졌다. ……나쁜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