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이면서 공공성을 향하는 재미주의자, 여행유목민이다. 나무와 한옥을 좋아하고 어린이와 학생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즐겁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에 대안적인 예술학교를 만드는 것을 꿈꾸며 달려왔으나 한국의 교육에 대해서는 지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세상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인中間人처럼 예술가로서 유목민적인 삶을 살지,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지 꽤 오래 고민했다. 어쨌거나 마음이 향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그 고민은 더 이상 고민이 아니게 될 것이다. 자연, 문화, 예술, 교육을 곁에 두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문제의식으로 계속 ‘프로젝트 인생’을 꾸려나갈 예정이다. 국어국문학과 교육인류학을 공부하였으며 사회의 다양한 섹터를 거쳐 지금은 울산과학기술원에서 과학예술융합 프로젝트 ‘사이언스 월든Science Walden’의 스토리 컨텐츠를 연구하고 있다. 2015년부터 자연 속 예술에 관한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원고를 집필 중이며 그 밖에 예술 프로젝트와 문화축제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개였다. 그러니까 승주가 나를 사람처럼 취급하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개 였다. 내가 승주네 집에서 살게 된 것은 그녀가 장민석과 결혼한 지 3년이 막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기록적인 폭염으로 쪽방 노인들이 하루 사이에 말없이 죽어 나간 날이기도 했다. --- p.10
승주는 불임 인정을 완강히 거부했다. 어쩌면 거부했다기보다 영원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철저하게 외면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생각의 우물에 빠지면 그 생각 밖으로 나올 줄을 몰랐다. 자신이 겪는 일이 밖으로 드러나는 병이나 장애라면 차라리 낫겠다 싶었다. 그러면 왠지 떳떳하게 아플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이것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은 총체적인 난제였다. --- p.54
인간이 나를 질투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지만 질투를 한다면 그것은 나의 늠름한 자태, 무엇이든 잘 듣는 귀, 말할 것도 없는 개코, 애교를 장전한 꼬리, 보드라운 털, 빠른 다리와 같은 것에 해당할 것이다. 그것들의 놀라운 감각. 내가 감각의 지도를 완성하여 장악하는 일을 두고 인간은 제한된 언어로 기껏 제한된 지식을 쌓으니 뭐, 질투할 수도. 그리고 나는 그녀가 할 수 없는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고 새끼를 낳음으로써 내 흔적의 영속성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제 그 누구도 그럴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