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만으로 이루어진 사람이 없듯이, 감성만으로 이루어진 사람도 없다. 모두 이성과 감성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고, 그 이성과 감성을 적절하게 사용하며 살아간다. 이성적인 엘리너와 감성적인 메리앤은 두 개의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우리 속에 잠재된 두 개의 얼굴인지 모른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누가 더 현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생각하게 된다. 사랑과 결혼에서 이성과 감성이 한쪽 방향으로 치우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완벽한 행복을 위해 감성과 이성을 얼마나 주장해야 하고 또 얼마나 양보해야 하는지를. ---「사랑과 결혼을 이해하는 두 가지 방법」중에서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도 50대 후반에 들어 결혼의 속성에 회의를 품었나 보다. 그가 예순세 살에 내놓은 《크로이체르 소나타》에는 결혼 생활 부적응 상태에서 아내를 살해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톨스토이의 문학을 살펴볼 때 그의 결혼관은 세 번 바뀐다. 그는 서른에 《결혼의 행복》이라는 단편을 발표하여 결혼을 행복의 상태로 단정한다. 그리고 마흔에는 《전쟁과 평화》에서 결혼의 건강함과 신성함에 대한 찬양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쉰 살에 발표한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불행한 안나의 가정과 지루한 오블론스키의 가정 그리고 순결한 레빈의 가정을 내세워 다양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순세 살에 출간한 《크로이체르 소나타》에서는 결혼 속에 감추어진 추악한 현실을 고발하며 묻는다. 정말 결혼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불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중에서
30년의 시간을 오가며, 결혼 전후 여자의 달라진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결혼을 앞두고 선택의 갈림길에 선 젊은 여성의 복잡한 심리와 결혼 이후에 자신의 선택을 뒤돌아보며 인생을 다시 생각하는 중년 여성의 복잡한 심리를 함께 담고 있다. 단편적인 경험으로서의 로맨스가 아니라 여성의 인생 전체에서 사랑과 결혼이 주는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 서로 바짝 붙어 서 있는 나무는 서로의 성장을 방해하지만, 적당한 거리에 서 있는 나무는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독립된 영혼을 갖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부부간의 거리, 부모 자식 간의 거리, 친구 간의 거리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자기만의 방을 유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