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0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되었다. 소설집 『행복』과 『봄빛』을 펴냈으며, 단편 「풍경」으로 2006년 제7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청암 송건호가 걸어온 길 청암 송건호는 1926년 충북 옥천 중농의 가정에서 태어나 성실한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 큰 어려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향을 떠나 한성사립상업학교에 다니며 훌륭한 스승의 지도하에 좋은 영향을 받았고, 식민지 조선이 처한 민족의 현실에 눈떴다. 한문과 역사를 좋아했으며 고서점을 찾아다니는 취미를 갖게 되었고 폭넓은 독서를 했다. 광복과 한국전쟁의 격동기를 겪으며 경성법학전문학교(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재학 중인 1953년에 대한통신사 기자 공채에 응모하여 외신부 기자로 언론인으로서의 첫발을 떼었다. 이어 조선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등 주요 신문사를 거치면서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한편 세계정세에 관심을 기울면서 민족의 나아갈 바를 탐구하는 역사가의 안목도 키웠다. 197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했으나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정권의 언론탄압과 기자 대량해임 사태의 바른 해결을 촉구하며 자진 사임했다. 그 후 물질적?정신적 어려움 속에서도 집필에 전념하여 『민족지성의 탐구』『한국민족주의의 탐구』『한국현대사론』『한국현대인물사론』 등 역작을 연이어 출간하며 저술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김대중내란음모죄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동아투위, 조선투위, 80년대 해직언론인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을 결성, 초대 의장을 지냈고 기관지 『말』지를 창간했다. 특히 86년 9월, 특집호 ‘보도지침’을 발간해 군부정권의 언론통제실상을 폭로했다. 1988년 국민이 출자해서 만든 한겨레신문의 창간을 이끌었고 초대 사장 및 회장을 지냈다. 퇴임 후 신군부에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전신마비의 고통 속에 놓이게 되었고, 8년간의 투병 끝에 2001년 12월 21일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