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큰 고을의 원님이 되었다오. 마침 그대가 사는 곳과 가까우니 어머니를 모시고 이리로 오시오. 내가 봉급의 반을 덜어 그대의 생활을 책임지리니 이제 그대가 굶주리는 일을 없을 것이오. 그대와 나는 서로 처지는 다르지만 취향이 같고, 그대의 재주가 나보다 열 배는 넘을 것이오. 그럼에도 나보다 더 심하게 세상에 버림받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내 비록 운수가 기박하나 이천 석짜리 벼슬을 몇 번 하여 달팽이 침 바르듯 스스로 살아갈 수 있지만, 그대는 입에 풀칠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애써야 하다니! 이는 모두 우리의 책임이오. 나는 밥상을 대할 때마다 땀이 나고, 밥을 먹어도 목에 넘어가질 않소. 빨리 오시오. 내가 이 일로 비방을 받는다 해도 나는 개의치 않을 것이오.
--- '그대의 생활을 책임지리니: 허균이 이재영에게 쓴 편지' 중에서
말안장을 이기지 못해 넓적다리 살갗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까. 제가 누누이 일렀건만 끝내 듣지 않고 망동을 했으니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닙니까. 상처 크기에 맞게 사슴 가죽을 얇게 펴고 자른 후 밥풀을 이겨 붙이면 상처가 빨리 낫는다고 합니다. 중의 살갗과 사슴 가죽이 서로 겨뤄보는 거지요. 회복하면 얼른 일어나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럴 수 있을 겁니다. 찌는 더위에 시달리던 중 겨우 적습니다. 그럼 이만.
--- '중의 살갗과 사슴 가죽: 김정희가 초의 선사에게 쓴 편지' 중에서
생각건대 일에는 부득이한 형세가 있는가 하면, 정(情)에는 매우 간절한 형편도 있습니다. 간절한 정이 부득이한 일과 만나면, 차라리 집안을 잊어야 한다는 대의(大義)에는 죄를 얻을지언정 형세가 간혹 부모를 위하는 사사로운 정에 치우치기도 합니다. (……) 제가 본래 용렬하오나 무거운 소임을 맡아 허술하게 처리할 수 없는 책임이 있고 몸은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는 처지입니다. 부질없이 높은 산에 올라 어머니가 계신 곳을 바라보며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간 자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문밖에 나가 기다리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식의 얼굴을 못 본 지 세 해가 넘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얼마 전 집에서 인편으로 편지를 보내왔는데, 어머님이 "날로 늙은 몸에 병이 깊어가니,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죽기 전에 네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구나"라고 하셨습니다. 남이 이런 얘기를 듣더라도 눈물을 흘릴 텐데, 하물며 자식인 제 마음은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어머니의 편지를 본 뒤로는 마음이 산란하여 다른 일에 정신을 쏟을 수가 없습니다. (……)
--- '어머니를 찾아뵐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이순신이 이원익에게 쓴 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