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다문 햇살이 내려앉는 보리밭 위로 종달새가 끊임없이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초희는 종달새를 보면서 화담의 시를 떠올렸다.
물어보자, 그대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천지에 가득한 봄기운을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눈을 감고 새가 되었다. 푸른 하늘을 가졌다. 마음껏 자유를 먹었다. 호랑나비도 되었다. 꽃의 중심으로 들어가 달콤한 세상을 실컷 빨았다. --- p.51
이달은 동가식서가숙하며 전국을 떠도는 방랑시인이었다. 무덤이건 여막이건 머무는 곳이 집이고 침실이었다. 그는 고려 말 명재상인 쌍매당 이첨의 후손이지만, 어머니가 기생 신분이니 종모법에 의해 서얼이 되었다. 재능은 조선 천지를 뒤흔들 만큼 뛰어났지만, 천한 신분이라 등용되지 못했고 그 한을 평생 시와 술, 여자로 달래고 있었다.
이달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면서 초희는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다. 살아가야 한다는 것. 살아가야 함의 엄정함. 삶이 곧 밥이라는 것, 그것은 무서운 현실이었다. 여자는 글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에 저항하던 시절 초희는 배고픈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영양실조라는 말도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 p.57
초희가 혼례 전 그린 그림 「앙간비금도」는 허엽이 말한 안빈낙도의 삶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다. 문실문실 쭉 뻗은 나무 밑으로 학창의를 입은 선비와 그 곁에 다홍저고리를 입은 소녀를 그린 그림은 실로 파격이었다. 그때까지 조선의 어느 화가도 산수화에 여자를 그려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과 강, 소박한 누옥과 면두가 맨드라미처럼 새빨간 암탉이 한가로이 흙을 쪼는 풍경은 허균의 이상향이었다.
그림의 허공에 초희는 와르르 날아오르는 새 무리를 그려 넣었다. 그림 속의 소녀는 고개가 뒤로 젖히도록 꺾어 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이에 대한 연민과 저항이 다시금 일었다. 어쩌면 누이는 자신이 그린 새들처럼 세상을 향해 날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는 절대 새들처럼 세상을 부유할 수 없었다. 그건 죽어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가 존재했고, 그들에게는 각자의 본성에 맞게 부여된 일이 있었다. 남자는 글을 읽고 세상을 떠돌며 삶의 길을 닦는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가 닦은 법을 따르면 그뿐이었다. 남자는 역사를 만들고, 여자는 아이를 낳고 조상을 모시는 것이 예에 맞았다. --- pp.99-100
시는 그렇게 왔다. 울남한 바닷물 위로 쑥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잉걸불 속에서 빨갛게 타올라 화로의 재 속에 간직되던 불씨처럼, 어머니가 좋아하던 깊은 산속의 접중화처럼, 기름진 땅을 두고 푸석거리는 모래밭에 피던 바닷가의 해당화처럼, 어부의 배에 실려 오던 펄떡거리는 물고기처럼, 물고기 눈을 감고 있던 짙푸른 해초처럼. 우주 속을 유영하던 그것들은 어느 날 초희의 영혼에서 시로 부풀어 올랐다. --- p.155
나연이 기다리는 것은 정혼자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나연이 잃어버린 꿈일 것이다. 바느질을 하고 길쌈을 짓고 동생들을 키우고 거기에 아비의 똥오줌까지 받아내야 하는 고단한 삶 어디에도 구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연에게 이미 정혼자는 사람이 아닌 신이었다. 부처였다. 나연은 허깨비를 잡고 자신의 고독을 삭이고 있을 뿐이다.
초희 역시 나연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녀 역시 무언가를 애타게 갈망하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초희는 그것을 찾아 금기를 어기고 울타리를 박차고 뛰쳐나왔다. 밤하늘의 별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을 뿜듯이 인간은 고통을 겪을 때에야 삶의 정수를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 pp.219-220
아이가 눈물이 흥건한 눈으로 초희를 바라보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초희는 가슴이 뭉클해져 경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를 가슴에 꼭 껴안았다. 아이의 몸은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차게 얼어 있었고 새털보다도 더 가벼웠다. 초희는 더욱 힘을 주어 아이를 품속에 꼭 껴안았다.
‘경란아, 네가 나의 미래구나. 오라버니가 죽고 네 어머니가 죽고, 또 내가 죽어도 너는 혼자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구나. 하지만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란다. 이 세상에는 너와 같은 소녀들이 많이 있을 테니까. 너는 점점 자라서 여인이 될 터이지. 그리하여 세상을 알게 되고 사랑을 배우고,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겠지. 슬퍼하고 기뻐하고 노여워하고 용서하며 살아가게 될 터이지. 경란아, 그것이 삶이란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란다. 고통이 따르는 것. 하지만 경란아, 고통이 오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고통은 네게 순금의 영혼을 줄 테니까. 네가 순금의 영혼을 가질 수만 있다면, 너는 더 이상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니까.' --- pp.374-376
임란이 끝난 후 허균은 제대로 된 난설헌의 시집을 만들어, 병오년(1606년)에 사신으로 온 주지번에게 전했다. 주지번은 중국으로 돌아가 『난설헌집』을 출판했으니 그녀의 사후 십팔 년 만에 중국에서 먼저 시집이 출간되었다. 조선의 여인으로서 최초로 자신의 시집을 낸 것이니, 이는 허균의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어느 날 주지번에게서 그 소식을 전해들은 허균은 문갑을 열고 편지 한 장을 꺼냈다.
난설헌이 죽기 전 그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였다.
『산해경山海經』에는 질민국?民國이라는 나라가 있다. 그곳에서는 길쌈하지 않아도 옷을 입고, 추수하지 않아도 밥을 먹고 살 수 있다. 질민국은 도연명이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읊은 무릉도원과 마찬가지로 민중의 소망이고 꿈인 낙원이다. 균아, 세상을 바꿔라. 세상을 너의 것으로 해라. 세상을 억압받는 자의 것으로 해라. 내가 시에서 노래한 낙원을 이 땅 조선에 세우거라.
만력 기축년(1589년) 삼월, 난설헌 쓰다
--- p.380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조선시대 최고의 문벌가인 안동 김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었음에도 허난설헌은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 시대의 여인들이 대부분 연정시나 규방가사를 노래한 반면 난설헌은 유일하게 민중의 삶과 선계를 동시에 노래했다. 그녀는 불과 스물일곱의 나이에 죽었지만 이백여 편의 시들로 인해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그녀는 자유를 갈망했고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으며 자신의 전 존재를 시혼으로 불사른 불꽃의 여인이었다. 그녀의 전 생애를 지배한 것은 오직 시였고, 시는 그녀에게 삶 자체였다.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