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건국대 영문과, 연세대 국제대학원을 졸업했다. 2001년 <한국소설>에 단편소설 <기억의 집>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중편소설 <식물의 내부>로 허균문학상을, 장편소설 《위험중독자들》로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 소설집 《식물의 내부》, 장편소설 《안녕, 추파춥스 키드》, 포토에세이집 《On the road》 등이 있다.
‘인간은 한때 식물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뿌리를 뻗고 얽던 습성이 남아 서로의 팔을 뻗어 안으려는 것 아닐까?’
(……) 뜨겁고도 차가운 도시, 서울에서 마주친 모든 포옹을 그려보고 싶었다.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 이별을 앞둔 남녀, 추위와 배고픔을 피하려는 노숙자, 소년소녀, 술병을 끌어안은 알코올중독자, 중년의 동성애자가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포옹을 양분 삼아 뻗어 올라가는 슬픔이라는 가지를 오래오래 바라본다.
두 사람은 가슴과 배를 밀착시키고 두 팔로 서로를 옥죄며 붙안은 채 몸을 떤다. 둘 사이에 놓인 거리를 단숨에 뛰어넘으려는 듯 필사적이다. 때로, 아니 자주 육체의 결합은 사랑과 욕망의 몸짓이 아니라 고독의 몸부림으로 보인다. 외롭다는 말과 안고 싶다는 말이 동의어라고 잠깐 하나가 된 두 개의 육체는 주장한다. 포옹은 인간이 고독을 숙명으로 안고 태어난 서글픈 존재임을 스스로 폭로하는 동작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먼 곳에서 당신은 웃는 얼굴로 말합니다. “사랑은 아무 잘못 없다. 너의 욕심이, 너의 조급함이, 너의 불신이, 너의 옹졸함이 너를 고통에 빠뜨렸다.”---「당신의 얼굴」 중에서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요” “울어서요, 어른이.” “그러니까 울어서 왜 미안하냐구요” “남한테 눈물을 보이면 빚을 진 느낌이 들어요. 잊어버려 줄래요.” “알았어요. 당신 운 적 없어요. 됐어요” ---「어디 가고 싶은 데 없어요?」 중에서
어떤 사람은 지옥과도 같은 연애를 한다. 어떤 사람은 천국과도 같은 연애를 한다. 어떤 사람은 천국을 지옥으로 알고 살고 또 어떤 사람은 지옥을 천국으로 알고 산다.---「나무는 너를 기억할 거야」 중에서
오후 세 시. 소금이 오는 시간이다. 염부들은 소금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저절로 오는 것이라 믿는다. 그들은 소금이 염전 바닥에 엉기는 것을 소금이 온다고 말한다. 그 시간은 대개 햇볕이 절정의 뜨거움을 마칠 시간인 오후 세 시나 네 시쯤 된다. 손님처럼, 낮잠처럼 소금은 그렇게 온다. 너는 소금처럼 낮잠처럼 그렇게 오후 세 시에 내게로 왔다. ---「소금이 오는 시간」 중에서
나는 알았다. 나와 무관한 타인의 호의가 얼마나 난감 한 것인지. 그것은 생활을 망치고 시간을 좀먹고 영혼을 갈라놓는다. 타인은 언제나 그토록 무례하게 자신의 무언가 를 들고 나타나 아무거나 요구해댄다. 이제야 너를 이해하다니.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많이 늦지는 않았다.
본문에 나오는 표현대로 ‘물음표를 달고 있는 당신 얼굴’을 여기서 본다는 것은 상큼한 일이다. 그것이 사랑의 본모습이라고 쓴 작가가 과연 있었을까,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들에서 ‘물음표’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조용하고 담담하게 묻고 있는 그것은 실은 사랑의 긍정이기 때문이다. 생동하는 젊음이 녹아 있는 서울을 가까이 숨 쉬듯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도 작가의 능력은 놀라운 바 있다. 자칫 툭툭 튕겨져 나올 것 같지만 어느새 우리 살결에 숨 쉬는 친화력. 담백한 가시 같은 게 있다면, 그런 것! 윤후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