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해군사관학교 장교 후보생들의 범선 경주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남극탐험계의 대부 클레멘스 마크햄에게 리더로서의 자질을 깊이 각인시켰다.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에 중산층으로서 상류층의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디스커버리 호 탐험대의 리더로 발탁되어 1901년, 남극에 도달하였다. 윌슨, 섀클턴과 함께 인류역사상 최초로 남극 내부로 진입하여 구십삼 일 동안 구백오십칠 마일의 썰매 행군을 하였다. 1904년, 탐험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스콧은 리더십과 능력을 인정받아 해군 대령으로 승진했다. 이 탐험은 출발 오십여 일만에 괴혈병에 걸린 섀클턴을 윌슨과 함께 무사히 귀환시킨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디스커버리 호는 ‘지리학적 목적과 과학적 목적’, ‘기술적 시스템 구축’, ‘자기학적·지질학적 연구’까지 모두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콧은 이 탐험대를 이끌고 돌아온 직후에 해군 대령으로 승진하였다. 그의 두 번째 탐험이자 마지막 탐험인 테라노바 호 탐험은 1909년, 공식 발표되었고 1910년, 남극을 향해 출항했지만 그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탐험이 되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보여준 용기로 사후에 기사 작위를 받았다.
역자 : 박미경
부산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영미 단편에 매료되어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새, 똑똑하고 기발하고 예술적인』, 『Dr.영장류 개코 원숭이로 살다』, 『덜어냄의 법칙』, 『더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아』, 『북미 문학 걸작선』, 『유괴』 등 스무 권이 있다. 특히 남극 탐험가 스콧에 대한 관심으로 그의 마지막 기록인 『남극일기』를 국내에 처음 소개했고, 허버트 폰팅의 『스콧과 함께-남극의 아티스트』를 번역했다. 저서로는 전자책 『남극의 스콧』이 있다.
범고래의 위협에 놀라다 1월 5일 화요일 두꺼운 얼음 여기저기에 금이 갔고 개 사이의 얼음도 금이 갔다. 다행히 개 두 마리는 물에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광경은 더 놀라웠다. 고래의 거대한 대가리가 그들이 만든 얼음의 금 사이에서 밀고 올라왔다. 갈라진 얼음 사이에서 대가리가 칠 내지 십 피트 올라왔을 때, 대가리에 있는 황갈색 무늬, 작고 반짝이는 눈, 끔찍한 톱니바퀴 같은 이빨 등이 선명하게 보였다. 생전 처음 보는 흉포한 모습이었다. 아마 고래는 폰팅과 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기 위해 올라온 것이 틀림없다. 개는 겁을 집어먹고 울부짖으며 줄을 팽팽히 잡아당겼다. 고래 한 마리가 대가리를 어떤 개의 오 피트 이내까지 들이댔다. 그 후에 놀이가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지, 폰팅을 완전히 놓쳤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사냥터로 몰려가 버렸다. 그래서 개 역시 무사했다. 더 중요한 것은 얼음 위에 오륙 톤의 석유통을 임시로 내려놓았는데 그쪽은 금이 가지 않아 피해가 없었다는 점이다. --- p.45
서부산 탐사와 탐사 보고서 빙하의 유동이 있었는데 평균 약 삼십 피트였다(오래된 페랄 빙하는 생각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수치를 기입한 결과, 빙하의 유동이 대개 이십삼 피트에서 삼십삼 피트로 말뚝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지난 칠 개월 반 동안의 결과이며 매우 중요한 관찰이다. 지금까지 해안 빙하의 유동에 대해 이런 실험을 행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예상보다는 큰 편이었지만 전문가들에게는 ‘비교적 침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것이었다. 21일, 우리는 빙하를 따라 내려갔고 북쪽 막다른 곳에 천막을 쳤다. 다음 날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 뉴 하버를 살펴보고 암석 표본을 수집하면서 빙퇴석으로 올라갔다. 베르나치 곶에서 투명한 석영을 많이 발견했다.그 속에는 구리 광석도 있었다. 나는 구리가 함유된 큰 표본 두세 개를 얻었다. 처음으로 광물의 작용 가능성을 암시하는 발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