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익상은 물리학을 공부한 후 신학으로 넘어와 조직신학과 종교철학을 공부하였다. 한편으로는 신학과 과학의 대화에,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간 대화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이 해방적인 삶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모색하고 있다. 『변선환 신학 새로 보기』, 『제3세대 토착화신학』, 『신학의 저항과 탈주』, 『올꾼이 선생님 변선환』 등을 공저하였다.
변선환은 휴머니즘을 기독교 신학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부리의 관점을 더 폭넓게 적용하여 휴머니즘과 종교를 종합하는 “진정한 휴머니즘”, “새휴머니즘” 을 말한다. 인간화를 세계공동체 형성과 더불어서 현대신학의 과제로 보면서 사랑의 휴머니즘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필수적인것이바로다원화된사회에서의종교간의대화인데, 그는 “사랑하면서의 투쟁” 을 종교 간의 대화에 적용하면서 이성과 신앙의 분리 불가능성과 마찬가지로 종교 내의 대화와 종교간의 대화 또한 서로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한다. 복음과 휴머니즘의 화해가 종교와 휴머니즘의 화해로 확장되어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p. 123
토착화신학과 관련하여서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1970년대 민중신학의 등장이다. 민중신학의충격은 변선환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토착화신학의 과제를 자신의 신학여정에 수용함에 있어서 민중신학이 제기하는 문제와 더불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종교의 토착화와 더불어 절대 빈곤과 억압에 살고 있는 민중의 해방의 문제가 토착화의 과제 속으로 함께 들어와야 한다는 견지를 갖게 된다. 이는 자칫 종교엘리트주의에 빠질 수도 있었을 토착화신학에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p. 186
변선환이 불이(不二) 중도를 추구하였음을 보여준 가장 분명한 방식은 기독교세계에 대한 자기반성 내지는 혹독한 비판으로 되어 있다. 불이(不二)중도를 정립의 형식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비정립의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불이(不二) 중도가 근본바탕에 지닌 부정의 논리라는 성격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가 반성 내지 비판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독교 세계의 문제는 이원론 내지는 이원성에 기반을 둔 인식론적·실천적 체계에 있었다. 그는 인격신론이 신과 인간의 이원성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신으로 하여금 참다운 의미에서 초월과 실존의 거리를 극복하고 포월하는 포괄자가 될 수 없게 한다고 비판한다.
이 책은 일아 변선환 박사에 대한 본격적 연구서로서 국내에서는 최초의 시도다. 무엇보다 변선환 박사의 논문 자료를 연대기 순으로 정리했고 그에 기초하여 사상 변천 과정을 추적한 이 부문 최고의 학술서라 하겠다. 앞선 연구사를 분석 정리하되 그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고 나아가 현대 과학사상의 빛에서 그의 종교해방신학을 조망하는 독특한 시도를 선보인 것이다. 변선환 박사를 향한 감리교단의 종교재판이 있은 지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분에 대한 본격적 연구서가 출판된 것은 의미 깊은 일이다. 이 책을 통해 후학들은 기독교를 이처럼 통 크게 사랑했던 한 신학자의 삶을 만날 것이며 그의 신학을 통해 세상을 사랑하는 정행正行의 길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정배 (감신대 교수)
변선환의 종교해방신학을 사랑의 관점에서 살피면서, 이것을 역동적인 것으로 살려내고 있는 이 책은 인문학적인 신학이 감리교의 토착화 전통 안에서 풍부하게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을 대표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불이(不二)적 사유 방법은 극단에 치우치는 비현실적 사유 방법이 아니라,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 균형 있는 성찰에 이르는 역동적이고 변증법적인 사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사유방식인 불이적 사유의 실례를 이 책이 잘 보여주고 있다. 권진관 (성공회대 구성신학 교수)
교권에 의해 파문당한 변선환 신학을 ‘불이적 종교해방신학’이라고 갈파한 이 책은 종교신학과 해방신학은 둘이면서 하나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책은 신과 인간, 초자연과 자연, 초월과 내재, 계시와 이성,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켜 파악하려는 모든 형태의 이원론적 논리를 진리의 이름으로 비판하고 도전한다. 진리 혹은 참 실재는 양극단의 동시적 부정과 동시적 긍정 속에서 항상 ‘새로운 사건’처럼 드러나기 때문이다.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