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정철은 가끔 꼰대. 아니, 자주 꼰대. 절반은 카피라이터 절반은 작가.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MBC애드컴 카피라이터, 단국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겸임 교수, 서울카피라이터즈클럽 부회장을 지냈다. 지금은 ‘정철카피’ 대표. 《카피책》, 《내 머리 사용법》, 《한 글자》, 《불법사전》, 《머리를 9하라》, 《인생의 목적어》 등의 책을 썼다.
‘누가 버릇없이 어른 이름을 함부로 불러!’ 김철수가 말했다. 하지만 김철수는 모른다. 자기 이름이 곧 사라지고 말 거라는 사실을 모른다. 이름 불러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엄마가 생각났다. 지금은 희선이 엄마이고 석찬이 할머니이고 10동 105호 어르신인 우리 엄마에게도 이름이 있었다. 이젠 아무도 불러 주지 않는 이름. 주민등록증 한쪽 구석에서 하루하루 빛이 바래 가는 이름. 나는 오늘 우리 엄마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 원희 씨, 미안해요. ---「어른 이름 함부로 부르면 안 된다」중에서
어른들은 그림을 재산이라 한다. 어른들은 공부를 승부라 한다. 어른들은 친구를 인맥이라 한다. 어른들은 맛있는 걸 편식이라 한다. 어른들은 사랑을 계산이라 한다. 어른들은 결혼을 조건이라 한다. 어른들은 자동차를 연봉이라 한다. 어른들은 축구를 전쟁이라 한다. 어른들은 미국 말을 실력이라 한다. 어른들은 눈을 교통지옥이라 한다. 어른들은 장난감을 사업이라 한다. 어른들은 집을 부동산이라 한다. 어른들은 강아지를 점심이라 한다.
어린이와 어른은 다른 종족임이 분명하다. 어린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거라면 이렇게 전혀 다른 언어를 쓰지는 않겠지. ---「어린이와 어른」중에서
세상엔 두 종류의 꼰대가 있다.
자신이 꼰대인 줄 알면서 꼰대 짓 하는 꼰대. 자신은 꼰대가 아니라고 확신하며 꼰대 짓 하는 꼰대.
전자는 몇 대 쥐어박고 싶을 만큼 밉지만 후자는 딱하고 가엾고 불쌍하고 안쓰럽고 애처롭다.
딱한 거나 가엾은 거나 불쌍한 거나 안쓰러운 거나 애처로운 거나 다 같은 말이다. 같은 말을 왜 이렇게 중언부언했을까. 종이와 연필이 남아돌아서 그랬을까. 제발 딱하고 가엾고 불쌍하고 안쓰럽고 애처로운 꼰대는 되지 말자는 뜻이겠지. 차라리 미움받고 몇 대 얻어터지는 꼰대가 되자는 뜻일 거야. ---「꼰대의 종류」중에서
무시 33퍼센트. 배타 33퍼센트. 단정 33퍼센트.
진짜 귀지는 딱 1퍼센트.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귀지의 성분」중에서
아이 눈에 아빠는 어떤 사람일까. 늘 손님처럼 잠깐씩 집에 들르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다. 그래서 아이는‘아빠’라는 말이 ‘바빠’에서 유래되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아이는 자라면서 알게 된다. 아주 조금씩 알게 된다. 그 손님이 젖은 길, 거친 길, 막힌 길 마다하지 않고 하루 종일먼 길을 걸어 집에 들른다는 사실을. 그의 발바닥은 쩍쩍 갈라져 있고 군데군데 피멍이 맺혀 있다는 사실을. ‘아빠’라는 말은 ‘바빠’가 아니라 ‘아파’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아빠라는 말의 유래」중에서
김철수는 영화 한 편 보고 나오면 감독과 배우와 시나리오까지 한꺼번에 혼낸다. 책 한 권 읽으면 작가 문체가, 시선이, 색깔이,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여기저기 고발한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공연 다녀와서는 특별히 지적할 게 없어 죄 없는 조명이나 세트를 물고 늘어진다. 세상은 이렇게 지적질이 몸에 밴 그를 꼰대라 부른다. 하지만 나는 이런 꼰대는 환영한다. 응원한다.
진짜 꼰대는 영화관에는 없다. 서점에도 없고 공연장에도 없다. 영화와 책과 공연을 완전히 놓지 않았다면 당신, 아직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