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문제아로 만드는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게
--- 김영표(zero@yes24.com)
# 1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1996년 여름, 중국여행에서였다. 여행이라고 해서 남들처럼 배낭여행을 간 것은 아니었고, 학교에서 (이전 해 총학생회 선거에서 나온 ‘학생복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전교생 중 일부 학생들을 선발해 보내주는 여행이었다. 우리는 같은 조에 속했는데도, 많이 어울리거나 수다스런 말을 나눠본 기억이 없다. 내가 다른 조원들과 함께 흙 맛이 진하게 남아 있는 중국 맥주나 ‘백주’라 하여 알콜 도수 40도의 고량주에 취해 있을 때도 그는 어딘가로 사라진 다음이었다. 여행 막바지에 우리는 청나라 ‘심양고궁’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모두들 그 규모와 화려함에 놀라 ‘와~’하는 환호성을 지르고 다니거나 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을 때 그는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하고는 끝이었다. “이게 다 민중의 피와 땀이야”라고. 얌전하게만 보이던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인지라 나는 아직도 그때를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를 다시 본 것은, 한 시사 주간지에서였다. ‘제9회 전태일 문학상 생활 글 부문 최우수상’ 당선자 자격으로 말이다. 그 짤막한 기사에서 나는 그의 근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 기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스물 여덟 살 난 아들과 쉰 아홉 살 된 엄마가 밤마다 앉은뱅이 책상에 마주앉아 일기를 쓴다”고. 학창시절에 학교 근처 봉천동에서 ‘빈민활동’에 열심이던 그는 졸업 후에도 어르신들께 한글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노동과 자신의 노동이 끝난 밤 11시에, 모자는 마주 앉아 글을 쓰며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 2
『문제아』는 작가가 1999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주관하는 제3회 ‘좋은 어린이 책’ 원고 공모에서 창작부분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좋은 어린이 책’이란 무얼까. 논자마다 달리 생각할, 수만 가지 답이 있겠지만 나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눈으로 바라본 일상을 그렸을 때만이 ‘좋은’이란 수식어에 가장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표제작인 「문제아」를 보자. 이 작품은 ‘문제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신랄한 보고서다. 깡패를 피해 도망간 주인공은 그 깡패들의 ‘똘마니’에게 이유 없이 얻어맞다가 "옆자리에 있는 의자를 그대로 집어 들“고 싸움을 한다. ”정신없이 얻어맞고 있었고, 그 애(똘마니)는 더 이상 그만 때리려는 기색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부터 주인공은 ‘의자를 들어 친구를 때린’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만다. 아이들은 슬슬 주인공을 피하게 되고 선생님은 이유를 들어보지도 않고 아이를 ”천하의 악질처럼 몰아“부치는 것에만 바쁘다. 마치 ‘주홍글씨’가 새겨진 사람처럼 주인공은 그때부터 문제아가 되고 만다. 아이가 느끼는 억울함과 결백에 대한 호소도 그 딱지를 떼 내기에는 힘에 부친다. 아이는 교통사고로 허리수술을 받은 아버지 대신 돈을 벌기 위해 신문배달을 하게 되고, 신문배달을 마친 뒤 어쩔 수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를 가게 되지만 선생님은 도리어 폭주족으로 몰아대기까지 한다. 학년이 바뀌면 좀 나아질까 기대를 해보지만 그것도 아니다. ‘생활기록부’속에서 그 아이는 문제아였고 새로운 선생님은 그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는, 현실을 제대로 보려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으로만 판단하려는 실제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생활기록부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선생님, 근거 없는 소문에 휘둘리는 아이들, 그리고 ‘저런 아이와는 놀지 말아라’라고 타이르는 부모님들. 모두다 또 다른 ‘문제아’들이다. 이 책에는 표제작을 포함해서 총 10편의 동화가 실려있는데, 「손가락 무덤」이나 고(故) 박래전 열사를 그린 「겨울꽃 삼촌」등의 다소 무거운 이야기들과 ‘독후감 숙제’를 통해서, 어려운 형편 때문에 돈이 많이 드는 학교 행사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도리어 선생님한테는 구박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엄마와 아이의 자연스런 화해를 이끌어내는 「독후감 숙제」등도 실려 있다.
박기범의 이번 동화는 다소 무겁고 어둡다. 그러나 그의 글 속에는 ‘진정성’이 담겨져 있기에 그의 글 속 주인공들의 말투나 행동들은 매우 자연스러우며 그만큼 전해지는 감동의 크기도 만만치 않다. 비가 온 뒤, “저 끝에 무지개 보이지? 저기엔 말이야, 무지개 미끄럼을 타고 놀고 싶어하는 요정들이 많단다”라는 행복한 동화 역시 세상에 필요하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현실의 모습을, 아이들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우리를 문제아로 만드는 모든 어른들에게도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