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손해를 선택해야 한다(고전 6:7). 나의 이익을 위해 타자를 희생하는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절망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희망의 구명정을 양보해야 한다. 그러다가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게 선장이다. 우리는 모두 선장으로 부름받은 사람이다(벧전 2:9). 우리 곁에서 절망 가운데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 뻔뻔한 그 선장처럼 아무것도 조치하지 않은 죄가 가장 큰 죄임을 기억해야 한다. ---「선장의 뻔뻔함에 치를 떨며」중에서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교회는 변화가 있는 교회이다. 나는 우리 교회가 어떤 모습의 사람이라도 올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교회가 욕을 먹는다면, 그 욕은 먹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비난은 감수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죄를 짓고서 뻔뻔한 모습으로 다녀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의 역사를 몸소 보여 주는 자들이 교회 안에 있기를 소망한다. ---「불량배들의 교회」중에서
사탄은 대단한 전략가이어서, 우리가 날마다 스스로를 성경에 비추어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들어 타락시킵니다. 냄비 안의 개구리가 튀어나가지 않게 물의 온도를 서서히 올리듯, 사탄은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들어 타락의 길로 이끄는 것입니다. 철저한 자기반성 없는 전통은 아무리 성경적이고 선한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악마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오는 글」중에서
못생긴 나무이기에 산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기에 산을 지키는 것이다. 보이는 현상 때문에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자가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볼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 산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