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대전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캐나다로 건너갔으며,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가 과정을 거치며 문학 번역을 시작했고, 옮긴 책으로 『나는 자유다』, 『노인과 바다』, 『셜록 홈즈 걸작선』, 『위대한 개츠비』, 『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들 중에 아주 극소수의 사건들만 인지한다. 셀 수 없는 사건들이 우리의 삶에 닥쳐오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하고 지나가거나 우리를 향해 다가오다가 그냥 되돌아간다. 우리가 만약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런 사건들을 모두 알아볼 수 있다면 희망과 절망과 환희와 공포들이 한꺼번에 덮쳐 와 우리는 단 한순간도 평온을 유지하며 살 수 없을 것이다. 이 사건들은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면서도 혹 아주 가까이까지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 어떤 희미한 빛이나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건들이 다가왔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이런 사실은 데이비드 스완이라는 한 젊은이의 하루 중 아주 짧은 찰나의 장면 하나만을 들여다보아도 알 수 있다. (중략) 풀밭은 데이비드의 침대보다 더 폭신했다. 옆의 샘터에서는 자장가와 같은 물소리가 소근거렸고 나뭇가지들은 그의 머리 위에서 꿈결처럼 바스락거렸다. 그렇게 깊은 잠이 비밀스러운 꿈을 숨긴 채 데이비드 스완에게 다가왔다. 이제 우리는 데이비드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건들을 보게 될 것이다.--- pp.40-41
지오바니가 발리오니 교수를 마지막으로 만난 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발리오니 교수가 갑작스럽게 그를 찾아왔다. 지오바니는 당혹스러웠다. 그는 그동안 발리오니 교수에 대해 거의 잊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쭉 그러리라 생각했다. 그는 지금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 있었고, 이런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할 사람이라면 그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발리오니 교수는 당연히 그를 이해하지 않을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최근 오래된 고전 작품들을 읽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았네. 어쩌면 자네도 아는 이야기일지 모르겠네. 인도의 왕자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한 아름다운 여자를 선물로 보냈다는 이야기 말이네. 새벽처럼 사랑스럽고 황혼처럼 화려한 여인이지. 페르시아 장미의 정원보다 더 짙고 달콤한 향기가 그녀의 숨결에서 풍겼다는 특징이 있던 여자네. 혈기 넘치는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은 단숨에 이 여자와 사랑에 빠졌지. 하지만 한 뛰어난 의사가 우연히 그녀에 대한 끔찍한 비밀을 발견했다지.” “그게 뭐였습니까?” 지오바니는 발리오니 교수의 눈을 피하며 시선을 아래쪽에 고정한 채 물었다. “이 여자가 태어날 때부터 독을 영양분으로 하여 자라 왔고 결국 독이 되었다는 사실이네. 그녀는 독으로 이루어졌던 게야. 그녀가 내쉬는 그 향기로운 숨결은 공기를 시들게 했지. 그녀의 사랑은 독이었고 그녀의 포옹은 죽음이었던 게지. 어떤가? 이런 기이한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