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는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거나, 선과 악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 따위는 지금 상황에서는 더운 여름날 걸친 털옷처럼 아무 가치 없는 일이었다.
‘우선 살아야 한다. 살아나기 위해서는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 진심으로 호소하면 되지 않을까?’
무이는 장 선배의 손바닥에 짓눌려 있는 입술을 움직거렸다.
“선배님... 한 번만 한 번만 살려주세요....”
--- 16회 중에서
무이는 제 방을 처음 들어선 사람처럼 구석구석 살폈다.
‘모든 게 그대로야! 그런데... 정작 나만 변한 거야? 아니, 변하고 있는 건가? 이러다가 내가 괴물이 되는 건 아닌가? 에일리언처럼 내 뱃속에서 괴물이 자라는 건 아닐까?’
--- 20회 중에서
‘제발, 아무 일 없게 해주세요. 제발... 대학교 못 가도 좋고, 평생 사랑하는 사람 못 만나도 좋아요. 제발 내 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나는 아직 학생이에요. 나는 잘못한 게 있다면 그 날, 다른 사람들이 알까 봐 소리를 지르거나 저항하지 못한 거예요. 이 세상에 장 선배와 나만 알고 있는 게 차라리 나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뿐이에요. 만약, 내 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엄마랑 아빠는 죽어요. 돌아가신다고요! 나 하나 때문에 우리 집은 멸망하는 거예요. 한 번만, 한 번만 나를 살려주세요. 다시는 이런 바보 같은 일은 당하지 않을게요. 그런 일이 생긴다면 사람들이 다 알아도 소리칠게요. 차라리 그런 수치를 당할게요. 제발, 제발... 한 번만 나에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제발!’
무이는 소리죽여 울었다.
--- 28회 중에서
‘소리내어 울어서, 눈물 흘려서 내 몸이 예전처럼만 된다면, 슬픈 전설 속의 여인처럼 밤낮으로 백 일이든, 천일이든 울 수 있어! 너무 눈물을 흘려서 몸이 나뭇가지처럼 말라버리든지, 아니면 몸이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든지... ... 괜찮아! 나는 괜찮아, 괜찮아... ...다시는 내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아도, 그래서 새들처럼 눈물 흘리지 않으면서 울게 되어도 괜찮아. 평생 내 입술에서 울음소리를 낼 수 없어도,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에도 울지 못 한다 해도 괜찮아, 괜찮아... ... 영원히, 영원히 나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여자가 되어도, 그리고 지구와 아무 것도 함께 할 수 없고, 아무 데도 함께 갈 수 없어도 괜찮아, 나는 괜찮아... ... 내 몸, 내 인생이 다시 예전처럼 깨끗해진다면!’
--- 32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