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쓰기 방법보다 우선하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동기부여가 되거나 어떤 것이든 내가 글 쓰겠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매개(媒介)를 만나는 일이다. 나는 지금 내 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어쩌면 이 같은 이야기도 어떤 사람에게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딸을 두고 하는 비유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적절한지는 모르겠고 어쩌면 생각이 짧은 치기(稚氣)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말 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 대부분은 한 가지 일이 만 가지로 통한다는 옛사람들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살 빼는 일과 글 쓰는 일 모두 사람이 하는 것이라 이 둘은 서로 통한다는 생각은 나의 믿음이다. 내 딸은 학교 다닐 때부터 비만아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못 해 애를 태우다 작년 오랜 도전 끝에 어렵게 취직을 했다. 말은 안 했지만 뚱뚱한 모습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진 일이 많은 것 같았다. 그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출근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딸아이 모습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이다. 전에는 온 식구가 매달려 살 좀 빼라고 그렇게 애원을 해도 안 되던 것이 회사에 다니고부터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면서 예전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이것을 보고 내가 느낀 것은 아무리 살 빼는 일이 어렵고 힘들어도 본인 마음이 돌아서면 저렇게 살이 빠지는 것이다. 입사하기 전과 비교해 지금 딸의 모습은 내가 봐도 신기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글 쓰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온다. 살을 뺄 때 방법이나 과정은 자기에게 맞는 방법이 무엇인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글쓰기에 따른 문법이나 작문기법은 글을 쓰다 보면 애써 따로 배우지 않아도 자연히 따라오게 된다. 처음 한글을 배우기 위해 자음 모음을 배우는 일과 글자를 익혀 단어를 배워 문장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런 과정에서 띄어쓰기, 맞춤법, 표준어 등 문법은 저절로 몸에 배어든다. 백 번 들어 머리로 아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경험(글쓰기)을 통해 아는 것은 머릿속에 제대로 쌓인다. 회사에 출근해서 자기를 바라보는 동료직원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마음이 돌아서서 어려운 살빼기에 성공한 딸아이처럼, 머릿속이 굳은살로 뭉쳐있는 우리도 이제 그 각질을 한 꺼풀씩 벗겨내야 하지 않겠는가. 중요한 것은 내가 글을 쓰겠다는 마음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것이 먼저다. 이것이 내가 책을 쓰는 이유다. ---「책머리에」중에서
우리 인생의 대부분은 나를 표현하는 과정이다. 자기를 표현하는 도구는 결국 글쓰기일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내 곁에 남아 함께하는 것이 글 쓰는 일이 아닐까 싶다. 내가 세상에 머물 수 없는 시간이 되면 이곳에 남아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일이기에 내 인생과 사랑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 그리고 내가 작가였다는 사실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글쓰기에 관한 책은 수없이 많다. 그것을 읽는다고 당장 글쓰는 솜씨가 달라지거나 좋아지는 건 아니다. 단지 물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줄 뿐이다. 길은 자기 스스로 걸어야 하고 물가에 가서 물을 먹고 못 먹는 것은 본인에게 달렸다. 빤한 글쓰기 이론과 작가의 체험, 글 쓰는 요령이 설명된 책은 기계의 작동 설명서처럼 배우는 사람에게 한계가 있다. 이미 정형화된 이론이 대부분이고 누구든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한 번쯤은 책을 통해 알거나 글쓰기 강좌 같은 데서 들은 이야기다. 그런 것들은 글 쓰는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 배워 알게 되고 혼자 깨우칠 수 있다. 나머지 일은 자기가 가야 할 길 하나를 잡아 거기에 집중하면 나머지는 자연히 따 라오게 되어있다. 나도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은 편에 속한다. 대학에서 문예 창작 공부를 하거나 누구에게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일이 없다. 오로지 컴퓨터에서 얻는 정보와 책을 읽으며 혼자 공부하는 것이 전부다. 어쩌면 나와 같은 과정을 거치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지도 모르고 처음에 나처럼 길을 몰라 헤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스승이 없는 나는 혼자 길을 찾으려고 애쓰다 보니 자연히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겪었던 어려 움이나 과정에 대한 많은 일을 수필이든 아니면, 무엇이든 그때 마음을 글로 표현했다. 내 이런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나 같은 사람이 더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걸어온 길이 산을 오르는 또 다른 길이라고 생각하기에 내가 그동안 고민하고 경험했던 일들을 수필로 썼다. 이 책 또한 인연이 되는 이가 본다면 그에게도 이것이 물가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처음에는 길이란 게 없었다. 사람들이 다니면서부터 길이 되었다. 이처럼 글쓰기의 길도 사람들이 많이 다닌 곳으로 간다면 가는 길이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가 산행할 때 앞서 간 사람이 달아놓은 표지기를 따라가듯 가야한다. 간혹 옆길로 빠져 다른 길을 탐험하는 때도 있지만, 나에게는 이곳저곳을 탐험하고 싶어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운이 좋은 것은 세상이 무섭게 달라진 지금, 사람들이 다녀 다져진 길을 아무런 보상 없이 쉽게 걸어가는 편안함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양손에 떡을 쥐고 또 다른 것도 먹을 수 있는 행운아일지도 모른다. 내가 등단하기 전과 등단할 때까지 겪고 체험한 시간 따라 지리산 둘레길 표지목을 따라가듯 그 당시 마음을 쓴 수필로 나름의 생각을 옮겨놓았다. 누군가는 말장난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물가를 찾는 나뭇가지에 달린 표지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