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은 전술적 계획(tactical planning)과 전략적 계획(strategic planning) 간의 차이를 배웠을 것이다. 1980년대만 해도, 3년에서 5년에 이르는 계획은 전술활동에 속했고, 5년을 넘어 10년까지는 전략계획 영역으로 다뤘다. 1990년대 정보화시대에 들어서면서, 빈번한 변화는 많은 파급 효과와 함께 계획 범위를 대폭 감소시켰고, 소프트웨어 개발 주기도 짧아졌다. 이제 1980년대처럼 긴 주기로 계획을 수립하는 조직을 찾기는 어려우며, 정보 기술 분야에는 특히 더 없을 것이다. 사실, 난 여러 관리자에게서 이런 농담을 들어왔다. "전술이란 오늘 하는 것이고, 전략이란 내일을 계획하는 거야." 대부분 농담이 그렇듯이, 이 농담에는 약간이지만 진심이 깔려있다.
새 변화 속도는 특히 대규모 형태의 시스템 개발 방법에 영향을 준다. 프로젝트 일정이 길어질수록 프로젝트 범위(scope)가 전략의 일부가 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과거의 수많은 경험을 통해 보면, 2년짜리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시스템이 원안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결과가 생기는 이유 중 하나는 전통적인 프로젝트 계획이 정확하지 않고 조악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많은 조직들이 애자일 개발을 적용하거나 실험을 해왔다. 애자일 개발이란, 프로젝트 범위를 좀더 작고 관리 가능한 조각으로 분해하는, 반복 점진적 개발(iterative-incremental development) 접근법을 말한다. 경영진 관점에서 보면 이상적인 접근법으로, 가장 긴 전략적 프로젝트에서조차 선행 반복을 통해 전술적 컴포넌트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선행 컴포넌트는 경영진이나 프로젝트 관리자, 프로젝트 팀이 막연한 비전을 향해 갈 때 프로젝트를 잘 헤쳐 나갈 수 있게 해준다. 변화를 수용하는 일이 항상 쉽지만은 않듯이, 애자일로 전환하는 일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변화가 많은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갖는 것처럼, 애자일 개발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통해 애자일이 개발조직과 그들의 리더십에 줄 수 있는 기회와 함께, 애자일이 갖는 잠재적인 위험에 대해서도 살펴볼 계획이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프로젝트 팀 안에서 또는 밖에서 일 해오며 느꼈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그 동안 보아왔던 많은 일은 동일한 뿌리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조직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었던 신뢰의 부족이었다.
오랜 기간의 전통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프로젝트 현황 보고서(project status report)는 너무 낙관적이며, 특히 프로젝트 초기 보고서들은 정도가 더 심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비즈니스 분석가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일정 지연 상황을 알기가 매우 어렵다. 분석 전이나 분석 중에는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 분석을 했는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체 양도 모르면서 자신들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프로젝트 후반부 들어 새로 발견된 요건으로 인해 프로젝트가 지연될 때쯤, 분석을 수행했던 사람들은 이미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돼 사라진 지 오래다.
둘째, 우리는 모두 '지휘 책임(in charge)'이 프로젝트 관리자에 있다고 오랫동안 배워왔다. 프로젝트 관리자는 팀을 관리하고, 지시를 내리고, 프로젝트 성공 전반에 책임을 진다. 이러한 모든 정신적인 압박과 기대를 한 몸에 받는데다가, 프로젝트 커뮤니케이션까지 책임진다. 이런 상황에서도 프로젝트 커뮤니케이션이 중립적이 될 수 있을까? 경영진이 세부적인 주간 프로젝트 현황 보고서를 추가로 요구하는 순간, 불신이 이미 깔려 있지는 않을까? 나는 이와 같은 불신과 역기능의 현상들을 계속 경험해왔다.
애자일 포트폴리오 관리(Agile portfolio management)가 문서로 의사소통하는 일을 없애주지는 않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만드는 기존 애자일 메트릭스(agile metrics)의 바탕 아래,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되도록 해준다. 애자일 포트폴리오 관리는 프로젝트 팀과 경영진 간에 확실하게 정의된, 애자일 원리를 기반으로 한 인터페이스를 수립해준다. 신뢰에 기반을 둔 이 원리들은 향후 조직 차원의 애자일을 향한 모든 변화 노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애자일 포트폴리오 관리라고 말에는, 전술적이든 전략적이든 또는 뭐라고 부르던 간에, 애자일 포트폴리오 관리 자체가 바로 기업의 미래를 나타내는 조직의 능동적 프로젝트 포트폴리오이기 때문이다. '애자일'이라는 용어는 포트폴리오 안의 프로젝트가 애자일 프로젝트는 물론, 포트폴리오 자체를 애자일 원리로 구축하고, 계속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현대적인 애자일 기업은 투명하고 명확하게 정의된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책에서도 누차 강조한다. 따라서 이 책은 프로젝껆 관리자는 물론 경영진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서문 중에서
'아무리 좋은 구슬도 꿰어야 보?'며, 애자일 방법이 아무리 좋아도 실제 프로젝트에 활용할 수 있어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국내 상황을 돌아보면, 애자일 방법을 알고 활용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많은 사람이 애자일 방식에 관심을 갖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애자일 방법을 실제 적용하고, 나아가 프로젝트에 실질적인 가치와 성공을 이끌어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책을 번역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전통적인 방식은 모두 나쁘고 애자일 방법은 모든 점이 좋다는 잘못된 오해는 하지 않기를 바란다. 전통적인 방법론 체계는 많은 IT 관련 프로젝트를 통해 한계를 드러냈고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그 동안 많은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오픈한 사례들도 많다. 기존 방식 안에는 사람/조직, 업무, 아키텍처, 관리, 프로세스 등 다양한 가치에 대한 통찰과 지식체계가 있다. 다만 변화하는 현실, 기간, 비용 등의 제약 상황이 프로젝트를 어렵게 만들 뿐이다.
나는 1999년에 처음 대규모 금융 프로젝트(Deal Composer)의 팀(Credit Analytics) 수준에 RUP과 함께 XP를 적용했다. 그 이후에도 삼성생명 등 여러 프로젝트에 부분적으로 적용해왔고, 2008~2009년에는 신영증권 차세대 프로젝트에 정보공학 방법론과 함께 스크럼을 적용했다. 애자일 방법론을 반드시 독립적으로 운용해야 하거나, 국내의 다른 방법론이나 조직과 어울리지 않는 방법론으로 인식할 필요가 없다.
1993년부터 CBD를 해온 내게 매우 소중한 경험을 안겨준 애자일은, 오랫동안 다양한 개발과 관리에 적용해 훌륭한 효과도 확인할 수 있었다. XP에 관한 교육과 세미나를 열고, 책을 번역하며, 프로젝트에 적용해온 12년 간의 애자일 경험은,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에 관한 모든 일을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는 소중한 통찰의 밑거름이 됐다.
애자일이 변화하는 현실과 모든 제약 상황을 극복하고 항상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중요한 가치들을 애자일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활용해서 더 많은 프로젝트를 성공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