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워싱턴답지 않은데요.” 제임스 이즈키얼 패치가 말했다. 밤이 되어 사람들은 응접실 난로 앞에 모여 앉아 있었다. 저녁 식사 때만큼이나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였다. 적어도 니키가 보기에는 그랬다. 그중에서도 체크 남작부인은 속절없이 동굴에 갇힌 사람의 표정이었다. 기차는 끊겨서 아침까지 없었고, 그녀는 농장 주택의 험한 침대에서 밤을 지내본 적이 없었다. 그날 있었던 일 중 그나마 가장 괜찮았던 것은 워싱턴의 유물이 묻힌 곳의 단서를 찾기 위해 ‘시미언 클라크의 일기’를 자세히 조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단서는 없었다. 가장 근접한 내용은 “빨간색 창고 뒤 삼각형 모양으로 심은 참나무들은 대통령 각하께서 손수 심으신 것이며, 나에게 약속한 대로 그중 한 그루 아래에 각하의 소중한 물건을 구리 상자에 담아 묻으셨다고 했다. 그것은 보스턴의 리비어 씨가 자신의 용광로에서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하셨다”라는 정도였다. “뭐가 워싱턴답지 않다는 겁니까, 패치 씨?” 엘러리가 물었다. 지금까지 그는 사람들의 대화 내용은 거의 듣지 않고 난롯불만 바라보고 있었다. “워싱턴은 이런 감상주의에 빠진 적이 없어요.” ---「대통령의 5센트 은화 모험」중에서
마이크는 천식 증상과 평발이 감당할 수 있는 최고 속도로 퀸의 아파트로 달려왔다. 탐정이 탐정의 자문을 얻는다는 것이 니키의 웃음보를 건드렸다. 거기에 퀸의 아파트 내부를 둘러보는 가련한 마이크의 모습도 어쩐지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아직 최고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엘러리.” 마이크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도둑을 맞았어.” “도둑이라고요.” 엘러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뭘 도둑맞으셨는데요?” “내 소득세 신고서.” 니키는 영웅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잠시 실례하겠다며 방을 나갔다.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 엘러리는 입가의 손수건을 치우고 있었다. “죄송해요, 마이크 아저씨. 제가 흉막염이 있어서. 소득세 신고서를 도난당했다고 말씀하신 건가요?” “그렇게 말했어. 그리고 넌 말처럼 건강하잖아.” ---「마이클 마군의 3월 15일 모험」중에서
이것은 역사적인 밤의 시작이었다……. 가장 어두운 역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집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포치가 발밑에서 삐걱거렸고 어딘가에서 물건들이 경쾌하게 쾅쾅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엘러리는 자신에게 매달리는 니키가 주춤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크 해거드가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보이지 않는 문을 계속 두드렸다. “제기랄, 맬비나, 문 열어! 문을 왜 잠갔어?” 문이 열리자 흐느적거리는 흰 네글리제를 입은 여자가 안에서 있었다. 불을 밝힌 검은 양초를 왼손으로 높이 쳐들고 있었다. 니키는 그 모습이 왼손잡이 자유의 여신상을 연상시킨다며 킥킥 웃었다. 촛불 뒤의 얼굴은 흰 가운보다도 더 창백했다. 허공을 노려보는 눈만이 생명을 지니고 있었다. “돌아와서 기뻐, 마크 오빠.” 그녀는 생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