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다리를 잘라냈다. 이렇게 아픈 적이 없었다. 내게 남은건 정신적 충격가 혈액순환마저 바꿔 놓은 불균형이다. 수술한 지 일곱 달이 지났는데 나는 여전히 누워 있고, 그 어느 때보다 더 디에고를 사랑한다.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그림도 계속해서 그리고 싶다. 디에고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에 디에고가 죽는다면 나 역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뒤를 따르리라 우리는 함께 묻힐 것이다. 디에고가 죽은 뒤에도 내가 살아있으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디에고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그는 아들이자 어머니이며, 배우자이고, 그리고 내 전부이다.'
--- p.295 죽음의 춤 중에서
붓터치가 많이 보이지 않는 화면에서 가장 강렬한 것은 4개의 눈동자이다. 무언가를 쏘아보는 듯하기도 하고, 그저 덤덤히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는 듯 하기도 하다. 강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자화상 속의 눈동자. 그것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고 있는 또 다른 자아의 시선을 아닐까. 그녀의 시선이 포착해낸 그림은 자신의 일생에 대한 솔직한 기록이다. 3번에 걸친 유산과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괴로움, 당대 멕시코 최고의 화가이면서 가정적으로는 불성실한 남편을 둔 불구의 여자가 당면해야 했던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사적인 고백이다. 또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던지는 인간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의 투영이기도 하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녀의 고통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느껴지게 하는 작품의 보편성은 여기서 나온다고 할 수 있겠다. 한 여성화가의 숨가쁜 인생이 뿜어져 나오는 <두 명의 프리다>로의 여정을 통해 시공간을 뛰어넘어 여성으로서의 연대감이 느껴진다.
--- p.64
디트로이트에 있는 내 벽화를 파괴한다면 나는 마음 속 깊이 고통을 느낄 것이다. 내 삶의 일 년이라는 시간과 내게 있는 최고의 재능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일이면 나는 다른 벽화를 그리느라 바쁠 것이다. 나는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생리적으로 그림을 생산하는 사람이다. 나무는 꽃과 열매를 맺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것을 잃는다고 한탄하지 않는다. 이듬해에 다시 꽃이 피고 열매 맺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 p. 5
고통스럽지는 않다. 그냥 피곤할 뿐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종종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절망감에 빠진다. 그림에 대해 몹시 강한 의욕을 느끼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내 그림이 무언가에 소용이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사실 지금까지는 당에 유용하게 쓰일 것과는 완전히 차별된, 극히 개인적인 감정만을 표현해 왔다. 이제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 혁명을 위해 투쟁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삶을 지속할 유일한 이유이다.
--- p. 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