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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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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양장)

유미리 저 / 김난주 | 민음사 | 2000년 04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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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82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7403408
ISBN10 8937403404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  판매자 :   이지헌북스   평점4점
  •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양장)
  •  특이사항 : 182쪽, 작은판(B6), 약간 색바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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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 김정희 candy@yes24.com
언젠가 정동극장에서 <물고기의 축제>라는 연극을 본 적이 있다. '유미리'라는 재일동포 작가의 희곡이라며 당시 제법 이슈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연극은 그다지 재미있는 편은 아니었으나 뭔가 비정상적이며 죽음의 기운이 서려 있는, 서늘하면서도 훈훈한 가족 이야기였다. 그 뒤 유미리는 국내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했다.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고, 그녀의 소설이 박철수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다는 등. 하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녀가 미혼모가 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 비쩍 마른 몸매에 긴 생머리, 가늘디 가는 몸의 선, 그리고 너무나도 우울해 보이는 표정. 세상에 대한 불만 혹은 시니컬한 정서? 그건 아닐 듯하다. 어쨌든 그 우울함이 낯설지 않았다.

유미리의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는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 연재됐던 에세이들을 모은 책으로 44개 장의 사전(glossary)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기존에 발표했던 책들의 사진과는 달리, 표지 속의 그녀는 소매 없는 하얀 원피스에 화장을 깔끔하게 하고 긴 머리는 위로 묶었다. 물론 그 우울함만큼은 변함없이 간직한 그녀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글을 쓰는 인간으로서 나는 나만의 언어로 세계를 표현하고 싶은 기묘한 정열을 품고 있다. 예컨대 '사랑'이라는 것을 어떻게 네 살 짜리 꼬마도 알아듣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전의 뜻풀이를 보면 '아끼고 위하는 따뜻한 마음', '이성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지만 사랑이란 '피를 흘릴 만큼 타자에 관여하는 일'은 아닐까. 사랑과 증오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어서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사랑이라는 말의 전체를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사전 속의 언어는 항상 생의 총체 속에서 검증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삶으로 나만의 사전을 만들기로 하였다."

심플하고 깔끔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솔직함'이다. 어렸을 적 버스 뒷좌석에서 이름 모를 아저씨에게 성추행을 당했을 때 그것이 묘한 흥분으로 다가왔던 일, 초등학교 때 오줌을 싼 기억 등, 결코 자랑스럽지 않을 과거를 그녀는 일상적인 단어들을 매개로 담담하게 그리고 건조하게 써 내려간다. '나만의 사전'을 만족스럽게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순수한 태도 혹은 그 욕망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여자, 남자 : 진정한 여자는 소위 아름다움이란 것을 단호히 내던지고도 한층 아름다운 사람. 진정한 남자는 남자임을 단호하게 받아들이고서도 여전히 외로운 사람.

먹다 : 독도 먹거니와 피도 먹는 이상한 본능. 요즘에는 홈리스도 미식을 한다.

거짓말, 소문 : 둘 다 없이는 살기 어려운 인생의 향신료. 때로는 흉기로 화하고, 때로는 진상으로 화하여 제멋대로 활보한다.

그리고 보조 열쇠, 술, 애완동물 기르기, 성욕, 알몸,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유방, 결혼…….

이 소소하고 일상적인 단어들의 모음은 유미리의 기억을 통과하며 점차 낯설어진다. 불행했던 성장과정과 기이한 주변 사람들, 그리고 독특하다 못해 괴팍한 그녀의 성격 때문은 아닐지. 술을 마시면 스트립쇼를 하고 카바레의 젊은 남자들과 놀아난 엄마, 월급을 받으면 오로지 돈을 쓰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 아빠. 나이 50이 되어 유방확대수술을 한 할머니. 포르노영화 여배우인 동생. 유미리는 파탄이 난 가정에서 방황하며 때론 자살을 기도한다. 거듭된 자살 실패. 결국 학교를 중퇴하고 극단에 들어간 그녀는 남자들이 주는 보조 열쇠를 가지고 이 집, 저 집을 전전한다. 항상 애인은 유부남이고, 집에는 전화가 없다. 글을 쓰다가도 워드프로세서를 몇 대씩 부숴버린다.

하지만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낯설음은 어느덧 익숙함과 친근함으로 바뀌어 버린다. 그녀에 대해 모든 소문과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녀의 연극 <물고기의 축제>는 극중 어머니가 막내딸의 임신을 받아들이고 아기를 낳으라고 허락하며 가족간의 화합을 이끌어낸다. 모처럼 가족의 구성원들은 환하게 웃으며 죽음의 그림자는 더 이상 서늘하지 않다.

유미리는 그 따스함이 그리웠던 것일까? 아직 채 돌이 지나지 않은 사내아이를 키우고 있을 그녀의 행방이 궁금해진다. 그녀는 아이와 함게 비로소 자신의 몫인 행복을 찾은 것일까?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최근에 이런 꿈을 꾸었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물새가 수면을 미끄러지듯 매끄러운 소리를 내며 버스가 멈춘다. 그리고 뒷문이 열린다. 나는 버스에 올라탄다. 어디에 앉을까 고민한다. 바로 앞자리에서 희끗희끗한 머리가 돌아본다. 천황. 내 쪽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뒷자리에 앉으라는 뜻이다. 미치코 황후, 2인석 자리 창가에 앉은 남자는 하얀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앉자 승객들이 일제히 슬로 모션으로 돌아보았다. 모두 황족들이었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옆에 앉은 남자의 옆얼굴을 바라본다. 황태자였다. 그는(에이, 써버리자) 나한테 한눈에 반한 모양이었다.
--- p.75
아버지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자동차 기름을 보충하듯 다음 월급날이면 또 새 동물을 사왔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어느 사인가 그런 동물들에 대해 증오심에 가까운 감정을 품게 되었다......

등뒤로 사람의 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2층에 사는 고모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모는 막 내가 만든 무덤을 파헤쳐 꺼낸 흙투성이 카나리아를 움켜쥐고는, 성난 목소리와 함께 내 얼굴에다 던졌다. 한국말이라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다. 울면서 용서를 빌었지만 고모는 막무가내였다. 다시 집어서 던지기를 몇 번. 얼굴과 머리에 명중할 때마다, 퍽 하고 끔찍한 소리가 났다.
나중에 고모는 아버지한테 그 일을 보고했는데,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월급날에는 내가 죽인 카나리아와 똑같은 선명한 노란빛 카나리아를 사왔다.
--- p.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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