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는 말일세. 운명을 따르다 보면 끝없는 겨울처럼 혹독한 시기가 있는데, 그걸 마음으로 미리 겪어두면 나중에 닥쳤을 때 가혹함을 덜 느끼게 된다고 말하고 있지.”

헨리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푸른 눈에 슬픔이 가득했다.

“이상하게도 몰리가 죽기 전에, 그러니까 아무도 아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 일이네. 어느 날 아침 일찍 젠트리 강가에 갔다 오는데 몰리가 나보다 먼저 죽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 아마 내 곁을 떠나리라는 사실을 예감한 것 같네.”

“그러니까 그처럼 마음으로 먼저 겪었기 때문에, 몰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혹독한 절망의 겨울을 지나지 않아도 되었단 말인가?”

헨리는 맞장구를 치며 생기가 넘쳐 말했다.

“그렇다고 상실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던 건 아니라네. 그건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슬픔을 덜어준 건 사실이었지.”

헨리는 잔을 내려놓고 탁자를 손으로 짚었다.

“그래서 이제는 명상과 사고를 통해 내 죽음을 미리 방문할 걸세. 말하자면 ‘모든 이별을 미리 겪는’ 거지. 심지어 나 자신과의 이별까지도 말이야. ”

헨리는 몰리가 손수 떠준 커다란 스웨터도 가지고 가기로 했다. 너무 커서 입으면 두꺼운 원피스처럼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는 단지 표현이 서툴 뿐, 그 스웨터가 정말로 마음에 든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아내 앞에서 여러 번 입었다. 언젠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남자는 이런 스웨터만 입고도 살아갈 수 있지.”
하지만 그것은 적당한 찬사가 아니었다. 아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건 스웨터가 마음에 든다는 한마디였다. 몰리는 서운했던지 눈물을 비쳤다. 그 후로 헨리는 더 이상 스웨터 얘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스웨터를 입을 일이 생기면 반드시 그것만 입었다.
어느 날 헨리가 참나무 조각을 대패로 밀고 있을 때였다. 아내가 몰래 등 뒤로 걸어와 부드럽게 그를 껴안았다. 그리고 몇 발자국 물러나 말없이 소매에 붙은 대패밥을 털어주더니 그를 혼자 남겨둔 채 집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 사이엔 어떤 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