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문화와 교양, 그리고 지식의 중심지라 불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비밀 서고에는 세상에 한 번도 드러나지 않은 보물들이 잠자고 있다. 그 중에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우리의 고서도 있다. 이 위대한 책은 백년 넘게 프랑스 국립도서관 지하 별고에 유폐되어 있다가 한 사서의 우연한 발견으로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는가 했지만 책의 존재로 일어나는 파장을 피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그 존재는 묵살된다. 진실을 아는 사람은 중국인 왕웨이, 일본인 마사코, 프란스인 상트니, 그리고 책의 존재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프랑스 국수주의 집단인 토트뿐이다. 이 비밀을 무기삼아 자국의 이익을 꾀하던 왕웨이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고…… 전설의 책은 다시 깊은 잠에 빠진다. 그로부터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 협상을 앞두고 바쁜 나날을 보내던 프랑스 국립도서관장 세자르에게 발송인불명의 우편물이 날아온다. 편지에는 왕웨이의 죽음에 대한 의혹과 두 개의 암호가 적혀 있었다.
HCD+227
옛날과 현재의 예의와 법규를 문장으로 상세하게 정리한 책
과연 이 암호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계 역사를 바꿀 비밀이란 무엇일까? 이 암호는 한 권의 책을 암시하는 것일까, 아님 두 권의 다른 책을 말하는 것일까.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서지 목록에도 없는 책이라면 도대체 어떤 책일까. 암호를 도구삼아 지하별고에서 전설의 책을 발견한 기쁨도 잠시 세자르는 곧 30년 전의 어두운 비밀과 관련된 자들에게 침묵을 종용당한다. 그들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한 세자르 역시 왕웨이처럼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데……. 세자르의 절친한 친구이자 직지의 발견자인 정현선 박사는 세자르가 남긴 암호를 단서삼아 토트의 맹렬한 연구자인 헤럴드와 외규장각 도서 반환 한국측 대표자인 최동규 박사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 모든 일 뒤에는 전설의 책이 있고 이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집단이 있다는 알게 된 정현선 박사는 역사를 바꿀 전설의 책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책의 존재에 접근할수록 비밀과 관련된 자들의 연이은 죽음이 일어나고 그녀도 목숨의 위협을 당한다. 토트의 조직적인 방해와 살해 위협. 연이은 살인. 토트의 실체를 파악해나가면서 밝혀지는 그들의 오래된 범죄와 음모…… 책의 존재를 숨기고 책의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을 거부하는 집단 토트과의 싸움은 결국 누구의 승리로 끝날 것인가? 전설의 책을 찾을 것인가? 결국 정현선은 전설의 책의 촬영한 필름을 확인하고……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긴 정현선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살짝 엿본 두 권의 빛바랜 고서를 손안에 넣는 그날까지…….
외규장각 1782년 2월 정조(正祖)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으로 병인양요 때 불타 없어졌다.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는 지난 1975년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 씨가 베르사유 별관 파손 창고에서 처음 발견, 세상에 알려졌으며, 92년 7월 주불 한국대사관이 외규장각 도서반환을 요청하면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로 간의 입장 차로 합의가 무산됐다.
금속활자 금속활자는 활판인쇄를 하기 위해 놋쇠·납·무쇠 등의 쇠붙이를 녹여 주형에 부어 만든 각종 활자로, 주자鑄字라고도 한다. 활판인쇄는 목판인쇄와 달리 낱개의 활자를 만들어 필요한 책을 수시로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목판인쇄에 비해 인쇄비용과 작업 시간이 줄어들어 훨씬 경제적이다. 이 금속활자의 발명국은 독일의 구텐베르크였지만 우리의 직지가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서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되어 2001년 9월 4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이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것이다.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의 행방을 좇는 이 소설은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요즘 독자들의 입맛에 맞을 만하다. 인문학과 문화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프랑스라는 이국적 배경이 한데 어우러지고, 쫓고 쫓기는 추리액션적인 서사가 보태져서 가독성이 뛰어난 것도 장점이다.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박범신 (소설가)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은 일찍이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대형추리소설이다. 19세기 조선과 21세기 한국을 넘나들고, 한국과 프랑스를 배경으로 긴박한 장면이 연속적으로 전개된다. 한국, 중국, 프랑스, 독일 간에 벌어지는 21세기판 책의 전쟁, 문화의 전쟁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 소설을 두고 손에 땀을 쥔다고 하던가. 오래간만에 읽은 대범하고 통쾌한 소설이다. 성석제 (소설가)
민족이나 국가를 사랑하기 쉽고 미워하기도 쉽다. 그만큼 민족이나 국가는 위험하고도 매력적인 소재이다. 이 소설은 그런 위험과 매혹 사이에서 제국주의 담론을 새롭게 문제 삼는다. 국가 자체가 아니라 전체주의를, 감정적인 애국심이 아니라 소수자적 윤리를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날렵하고 신선하다. 김미현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