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암정보센터(2013년12월26일자)에 따르면 2012년 암으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7만3천7백59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27.6%를 차지하였다. 또 이 해 21만8천17명(인구 10만 명 당 4백35.1명)의 신규 암 환자가 발생하여 10년 전에 비해 한 배 가량 늘었다.
지난 1999년부터 2011년까지 암을 앓았던 사람은 1백9만7천2백53명으로 2011년 전체 인구(50,111,483명)의 약 2.2%다. 이들은 지금까지 암 치료를 받고 있거나, 또는 암 치료 후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5세 이상(5백52만5천6백32명)의 경우, 13명중 1명(전체인구의 약 7.7%)이 암환자이거나 치료 후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국민의 평균수명인 81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6.4%(남성은 5명 중 2명, 여성은 3명 중 1명)로 추정되어 암이 사망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암이 사망의 주범임에도 불구하고 암에 대한 의술 및 치료체계는 아직 불치병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암 치료를 위한 개인의 준비 및 정부정책 등도 부족하다.
주변에서 누가 암 판정을 받으면 통상적으로 마음속으로 쾌유를 빌며 당사자나 그 가족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지만, 자신이나 가족이 암에 걸리면 사정이 사뭇 달라진다. 암에 걸린 당사자의 신체 및 정신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를 살려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가족 모두의 수고로움과 초조함, 그리고 경제적 부담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하면 간병에 지친 가족들의 우울함과 경제적 쪼들림 등으로 가정이 풍비박산(風飛雹散)나기도 한다.
예로부터 우리 속담에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다. 우리의 암 환우들이
어찌 이를 모르겠는가. 그래서 효자는 그만두더라도 자신의 긴 암 투병 탓에 가족구성원 사이가 서먹서먹해지고 가정이 붕괴되는 최악의 사태만큼은 꼭 피해보고 싶은 게 그들의 안타깝고도 간절한 바램이다.
나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암에 걸린 아내를 살려내기 위해 혼신을 힘을 다했다고 감히 자부한다. 11년 6개월 동안 암투병중인 아내의 남편으로, 보호자로, 그리고 간병인으로서 아내와 함께했다. 그동안 제 아내는 암과 싸워 이기기 위해 8차례의 수술을 받으며 12번이나 병원을 바꿔가며 사선을 넘나들었다.
병원에서 산 날이 5백여 일이나 되고 병원을 드나들며 치료를 받은 회수만도 3백50회가 훨씬 넘는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지난한 인고의 세월이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만큼 열과 성을 다했다. 그러나 하늘의 보살핌은 거기까지였다.
평생을 군문에 바쳐온 내가 서툰 글솜씨를 내보이면서까지 이 글을 쓰기로 용기를 낸 이유는 대체로 세 가지다. 첫째는, 아내의 병상을 지키면서 겪었던 그 숱한 체험들을 지금 이 시간에도 나와 똑같은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수많은 암환우 및 그 가족들에게 그대로 전해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들에게 힘을 주고 보탬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둘째는, 암환자 치료와 관련하여 그 효율성의 극대화를 위한 정부 보건정책의 적극적인 개선과 확장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이미 세계적으로도 그 효율성이 우수한 제도로 인정받고 있다. 이에 힘입어 많은 암 환우들이 경제적으로 큰 혜택을 보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살릴 수 있는 생명을 끝내 죽음으로 내모는 제도의 맹점이 도사리고 있다. 예컨대 요즘 속속 개발되는 효능 좋은 암치료신약들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에 늑장을 부리고 있는 것 등이 하나의 단적인 실례다. 이들 암 치료 신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은 국민의 생명권 존중 차원에서도 당장 실천에 옮겨져야 한다. 암환자는 물론 그 가족들의 고통을 십분 헤아려 정부가 발 벗고 나선다면 이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렇게 되면 비싼 암 치료비 등을 감당하지 못해 무너지는 가정도 붙잡아주는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거두게 될 것이다. 옛 성현의 말씀에 ‘군주는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고 했다. 정부가 국민의 마음을 얻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불행과 고통 중에 있는 국민의 손을 주저 없이 잡아주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끝으로 처절했던 아내의 암 투병과 나의 간병 기록들을 책으로 남겨 두 자식은 물론이고 일가친척과 그 후손들에게까지 자계로 삼고자 함이다. 마음 같아서는 내 후손 중에 보잘 것 없지만 이 기록을 보고 분발하여 마침내 암을 정복하는 명의가 나오기를 은근히 기대해 본다.
11여 년 전 아내가 직장암 판정을 받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한참동안을 “왜 하필 내 아내인가?” 하는 참담함과 낭패감으로 망연자실했다. 그러면서도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아내만큼은 살려 내야 한다” 는 일념으로 실성한 사람처럼 정신없이 쏘다녔다. 어디를 가나 살얼음판이었다. 행여 얇은 얼음이 깨질까봐 살금살금 걷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렇게 하기를 5년. 암 판정 뒤 5년은 암환자들에게 생사의 분수령이다.
이 고개를 넘었으니 “이제 살았구나”하고 안도했다. 그러나 억울하게도 내 아내에게 만큼은 이 5년이 생명의 동아줄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2년 뒤 아내의 암은 다른 부위로 전이됐다. 그 때의 절망감을 어찌 필설로 다 형언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의료진의 항암불가 판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를 살리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들고 뛰었다. 내 가슴을 새카맣게 태우는 아내의 고통 속에서 나 또한 남편으로, 보호자로, 그리고 간병인으로서의 아픔과 고뇌를 넘어 인간으로서의 비애와 한계를 극복해야 했다. 동시에 풀죽은 두 자식의 사기를 북돋고 쳐진 어깨를 곧추세워주며 뚜벅뚜벅 걸어 나가야 했다. 지금 되돌아보니 그 때의 아프고 시렸던 장면들이 활동사진처럼 눈앞을 스쳐 간다. 그러나 이것이 설사 드라마이고, 꿈이라고 해도 이런 드라마와 꿈은 두 번 다시 보거나 꾸고 싶지 않다.
암 투병은 너무 지독해 간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말할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다 아는 얘기지만 암은 무엇보다도 조기발견이 중요하다. 가족의 사랑과 정성, 눈물겨운 간호가 뒤따라야 하며, 암 환우는 닥치고 먹어야만 살 수 있다. 이에 덧붙여 암 치유의 핵심은 크게 보아 세 가지다. 최후의 순간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고 훌륭한 의료진과 병원을 만나야 하며 환자가 암과 싸워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한편 이 책은 이런 순서로 꾸몄다. 1부(아내의 암 앞에 억장은 무너지고)는 ‘최초 암 발견 및 조치와 치료’를 열거했고, 2부(생사의 갈림길에서)에서는 ‘암의 전이와 전이 후 말기 암’에 대한 단말마적인 치료과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3부(‘암중모색’)는 암으로부터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삶에 대한 성찰과 보호자·간병인으로 직접 보고 경험하고 느낀 사항과 보호자 유의사항을 종합 기록하여 참고사항으로 제시했다. 또한 의료기관 등은 암으로 고생하는 많은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위해 필요에 따라 실명을 기록했다.
이제 이 지면을 빌어 11년 여 동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잘 참고 견디어준, 그러나 끝내 지금은 없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살아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그 고통을 옆에서 직접 보고 이를 깨물며 참고 견디면서 고비 고비마다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창의력으로 어머니 생명연장의 결정적 역할을 한 작은 아들 기승이, 갖은 난관을 극복하고 훌륭한 명의의 길을 걷고 있는 장남 기운이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고마움과 가족애(家族愛)를 표하면서 “암에 걸려 정말 미안하다”는 너희 어머니의 말을 대신 전한다.
어려운 고비마다 정신·물질적 성원과 용기를 준 형님과 일가친척·친구·지인들께 고마움을 전하며, 따뜻한 사랑과 진정한 인술로 아내를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해 삶을 연장시켜주신 많은 의료진께 무한한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편집·디자인·출간하여 세상의 빛을 보게 해주신『도서출판 북신』이재훈 발행인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14년 5월
관악산 자락에서 강태완 드림
---들어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