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아 벨: 바이올린 로망스
글|Linda Kobler / 번역|정준호
아름다운 멜로디는 완벽한 향수와 같다. 향기롭게 감각을 떠도니 말이다. 박수 갈채가 멎고 음악회장을 나선 후, 방금 음악을 듣고 나왔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은 기껏해야 손에 남은 티켓 반장뿐이다. 그러나 우리 뇌리에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남아있다. 멜로디는 비록 짧고 희미한 구절일지라도 한번 더 음악을 소생시킨다. 전체 음악 중 그저 한 부분일 뿐이고 종종 리듬과 하모니의 뒷자리로 밀려나기도 하지만 우리와 함께 하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멜로디이다.
조수아 벨은 '바이올린 로망스'를 위해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고 마음을 순환시키는 독특한 힘을 가진 열세 곡의 멜로디를 골랐다. 벨은 그의 청중이 여기 선택된 멜로디에서 감흥을 얻게 되리라 확신한다. ?콘서트가 끝나고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곡을 물어보면 그들은 화려한 것보다는 느린 작품을 더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아름다운 멜로디만 모아 음반을 만드는 것은 이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벨은 화려한 테크닉으로 유명한 연주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색다른 것을 생각했습니다. 더 짧은 곡을 연주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섬광 같은 것은 아니고요. 그 결과물이 '바이올린 로망스'이다. 벨은 몬테베르디에서 드뷔시에 이르기까지 400년의 시간을 오가는 멜로디를 손수 골랐다.
벨이 고른 멜로디는 이런 종류의 음반에서 흔히 짐작되는 것과는 달리 악기의 고유 영역을 넘어선다. ?처음에는 가장 아름다운 바이올린 멜로디를 골랐습니다. 그런데 레코딩을 진행하면서 성악이나 피아노 곡을 위한 멜로디가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레이그 리언(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의 음반 제작자이자 편곡자)의 말끔한 편곡으로 앨범은 곧 피아노와 오페라의 영역까지 파고들었다. '바이올린 로망스'의 컨셉트는 바로 위대한 멜로디는 융통성 있고 서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벨은 강조한다. ?음악은 돌이 아닙니다. 쇼팽 시대 바이올리니스트는 피아노 작품을 바이올린으로 편곡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사라사테나 비에냐프스키, 크라이슬러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작곡가 자신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모차르트나 바흐처럼 말이죠. 만약 우리가 음악에 선입견을 버리고 마음을 그저 가고싶은 대로 내버려둘 수 있다면, 아름다운 멜로디는 악기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슈만이 좋은 예입니다. 피아니스트들은 언제나 그 자체로서 훌륭한 슈만의 음악을 연주하기 어렵고 불편하다고 말합니다. 글쎄요, 아마 다른 악기로 편곡된다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슈만은 음악을 작곡할 때 악기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지요.
이 음반에 수록된 곡 상당수가 개인적이고 특별한 이유로 선택되었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는 벨이 어머니의 피아노 연주로 이 곡을 듣곤 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고른 곡이다. 그의 연주는 이런 추억에 대한 향수가 가득하다. 드뷔시의 '아마빛 머리 소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의 가운데 악장('엘비라 마디간'), 쇼팽의 녹턴 C#단조는 벨이 오래 동안 사랑해 온 피아노 곡이다. 이 음반의 특징은 이 곡이 바이올린에 맞게 완벽하게 개조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작품들을 피아노 곡처럼 대하지 않았습니다. 쇼팽의 연습곡은 바이올린으로 편곡되지 않지만 녹턴의 경우는 다릅니다. 사실 피아노로 할 수 없는 것을 바이올린으로 할 수 있습니다. 바이올린은 활의 뉘앙스를 가지고 음과 음 사이의 소리를 낼 수 있지요. 아주 자연스럽고 표현력이 풍부한 소리가 가능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바이올린이 피아노보다 낫습니다.
벨은 성악 레퍼토리를 열심히 연구했고 몇몇 보물을 발견해냈다. ?벨리니의 '정결한 여신'을 듣고 있을 때, 즉각 이 곡을 바이올린의 어떤 옥타브로 연주해야 하는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굉장한 바이올린 소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푸치니의 '오 소중한 나의 아버지'는 이 음반에서 가장 유명한 곡일 것입니다. 앨범의 ?간판 작품?이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진부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결국에는 더블 스톱(두 음을 한번에 연주하는 것)과 포르타멘토(여러 음을 미끄러지며 연주하는 것)를 가진 바이올린 작품이 되었습니다.
최근 벨은 작곡에도 힘쓰고 있다(소니에서 로저 노링턴의 지휘로 내놓은 멘델스존 협주곡의 카덴차 부분을 직접 작곡했다). '바이올린 로망스'에서도 바이올린 파트를 직접 편곡했다. ?바이올린으로 편곡하는 것이 좋아서 직접 썼고 그 부분들을 크레이그 리언과 같이 작업했습니다.
슈베르트 '세레나데'의 경우 옥타브를 정하고, 더블스톱을 추가하고, 무엇보다 바이올린에 적합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나에게 있어 슈베르트야말로 진정한 멜로디 작가입니다. 그의 곡을 빼놓고 ?멜로디 앨범?을 만들 수는 없었지요. 드뷔시의 ?아마빛 머리 소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하이페츠가 그 곡을 연주하는 것을 보고 자랐고, 그의 연주 장면을 담은 영화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곡을 정말 좋아하지만 하이페츠의 버전으로 연주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악기 편성을 사용했고, 화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이페츠는 원작을 변형시켰지만 우리는 드뷔시의 악보로 돌아갔습니다.
벨은 '바이올린 로망스'의 애창곡들에 대해 고백한다. ?레퍼토리를 고르면서 '명상'(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 가운데)과 같은 고전적인 곡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명상' 대신 '비가'를 포함시켰고, 덜 알려져 있지만 무척 아름다운 이 곡이 더 마음에 듭니다. 이 앨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입니다. 앨범에 수록된 곡은 벨의 취향과 멜로디의 본질을 꿰뚫는 그의 능력을 잘 보여준다. ?이 음반에 수록된 곡이 반 시간 짜리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모두가 잠깐 동안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짧은 이야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