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 띠풀들을 부러뜨리며 갔다 가슴이 약한 예각의 새가 날아갔다 그는 돌 속에 부주의하게 앉아 있다가 내 이마를 탁 때려 주며 솟아오르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새똥 한 알 발견하지 못했지 총신에 온기가 쌓인다 먹지도 못할 새라며 내심 언짢아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이 쟁쟁해 오고 숲의 끝을 돌면서 무슨 놈의 새가 깃 스침이 그리 눅눅한지 집으로 돌아가서 책이나 볼 것이었다 혼자서 새를 쏘러 나서면 물소리도 적의에 차고 침엽거수도 쿵쿵 위협한다 구름마저 낮다 말과 개와 집요한 추적으로 이내 더러워진다
오늘은 말을 묶고 개를 저버리고 느릿느릿 숲을 옮아가지만 모두가 새들과 한패다 나뭇가지를 휘는 바람과 망자의 날의 박주가리 솜털도 축축하다 공중으로 총구를 잰다 새는 어리고 구우면 고엽같이 뼈째 부스러진다 버려진 농막에 엎드려 총탄을 세고 소매에 튄 피를 털어 내면 늦은 불면이 온다 직박구리 떼가 쳐 놓은 그물이 산오이풀의 어둠 속에서 떨고 있으리니 칼로 가슴을 째어 소금을 넣는다 새의 추억의 발목을 끊는다 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새를 쏘러 숲에 들다」중에서
그날 그가 내게 말을 걸었다 너였구나 여릿여릿 조그만 넋이 나는 두리번거렸다 누가 그의 말을 들었을까 봐 떨면서 그가 웃었다 무구하고 호젓한 울림 눈 감지 마 너와 나는 서로 움집이야 나는 너를 감췄다
---「가슴 저린 오얏 향기의 시절을 기리는 노래」 부분
여러 가지 아프고 아픈 자리에 어느 꽃무늬 진 사랑이 와서 뭇 나무들 들릴락 말락 기침하누나
혈연이나 학연으로 이어진 이들을 뺀다면 시인 윤택수를 아는 사람은 드물 테다. 그는 중학교 국어 교사, 용접공, 원양어선 선원 등을 전전하며 시 110여 편을 쓰고 41세에 요절한다. 죽은 뒤 벗들이 『새를 쏘러 숲에 들다』라는 유고 시집을 펴냈는데, 그 시집을 읽다가 사유의 약동과 상상력의 비범함에 놀랐다. - 장석주 (시인)
그는 천생의 시인이었다. 예민한 감수성과 신선한 감각으로 우리말의 결을 아름답게 수놓은 시인…. 그는 기성의 어느 시인과도 닮지 않은 그만의 독특한 언어 표현과 감수성으로 완강하고 고집스러운 세계를 보여 준다. - 윤형근 (시인)
시인은 110여 편의 작품을 통해 독특한 시 세계를 창조해 내었다. 그 세계는 현실 속에 지어졌지만 현실과는 아주 다른 세상이다. 겨울이면 눈으로 막혀 고립되는 마을, 울새가 광천 근처에서 지저귀고 야생 딸기와 특이 식물들이 우거지는 세계…. 그의 노래는 슬프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