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 말이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모두 고개를 들라!” 이제는 하오체도 아니고 하대를 하는데도 미처 거기까지 신경 쓰는 사람들이 없었다. 분위기가 너무 살벌했다. “저… 전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거듭되는 호통에 신료들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왕을 바라보다가 대경실색했다. 참으로 망극한 상황이 자신들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명복이 울고 있었다. 분을 참지 못하는 듯 손을 부르르 떨면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눈에는 핏기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저… 전하! 죽여주시옵소서.” “전하! 신을 벌하여주시옵소서.” “전하! 신을 죽여주시옵소서.” 제정신들을 찾았는지 일제히 죄를 청하는 신료들의 목소리가 편전에 가득했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명복이 어리석지는 않았다. 신료들을 안타깝게 여기며 명복은 준비된 각본대로 움직였다. “상선은 그것을 가져오라.” 명복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상선은 급히 지시했던 물건을 비단으로 덮어서 가져왔다. 상선이 옆으로 다가와 준비된 물건을 앞으로 내밀자 명복은 바로 비단을 벗겨내고 그 속에 있던 물건을 손에 잡았다. 신료들은 다시 한 번 경악해야 했다. 명복의 손에 쥐어진 것은 다름 아닌 칼이었기 때문이다. 칼로 무엇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싹둑. 오늘 신료들은 여러 번 놀랐지만 지금처럼 경악할 일은 오늘 이후로 없을 것이며, 심지어 자기 마누라가 바람피웠다고 해도 오늘처럼 놀라지는 못할 것이다. 명복이 상투를 자른 것이었다. “저… 전하…….” 신료들은 잠시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말하는 사람도 그렇다고 죄를 청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모두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 빠져 그저 말없이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만 짓고 있었다. 이런 신료들과는 달리 명복은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다른 손에는 잘려나간 상투를 쥐고 피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과는 달리 그의 머리는 냉철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휴… 이 정도에서 신료들이 모두 감동감화해서 내 말만 따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자신의 바람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모를 리 없는 명복이었다. 따라서 이제 준비된 연기의 끝을 펼쳐보여야 할 때였다. 지금 당장에야 분위기에 취하여 아무 말도 없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사태를 파악하고 사방에서 공격해 들어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명복은 손에 쥔 칼을 내팽개치며 다음과 같이 외쳤다. “내 오늘의 수모를 복수하지 못한다면 결코 두 번 다시 하늘을 보지 않을 것을 천지신명께 맹세하노라.”
갑자기 과거로 환생하게 된 주인공 명복은 자신이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잠시 혼란에 빠진다. 그것도 평민이 아닌 앞으로 나라를 이끌어갈 조선의 임금인 고종으로 환생했다는 놀라운 사실 앞에 그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당시의 조선은 약소국이자 침략자의 탈을 쓴 외세가 호시탐탐 노리는 먹잇감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한 명복의 필사적인 노력. 원 역사에서처럼 힘없고 초라한 조선이 아닌 그 어떤 나라도 쉽게 넘볼 수 없는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명복의 치밀한 계획들이 드디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