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는 현금으로 주면 틀림없이 전액을 술로 탕진해 버릴 것 같아서, 내가 직접 인사동 화방에 들러 상금 5천 원을 모두 그림도구로 바꾸어 오는 도리밖에 없었지. 학장님의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태였다. 나는 상금을 받는 대신 한 보따리의 그림도구만 끌어안게 되었다. 참관인들과 수상자들은 매우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하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앞으로 외상독촉을 무마시킬 일들이 태산 같은 걱정거리로 부각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림도구를 한 보따리 끌어안고 보니 한편으로는 행복한 기분도 주체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 p.152
맹물나라의 신하들은 한결같이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래서 일체의 욕심을 버린 토웅을 보고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처럼 찾아온 출세의 기회를 박차 버린 바보로 취급했을 뿐이었다. 토웅은 집으로 돌아와 날마다 깊은 근심에 싸여 있었다. 어느 날 친분이 있는 선비 하나가 찾아와 근심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토웅은 크게 후회하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본디 사람은 세월이 흐르면 노쇠하기 마련이고,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기 마련이거늘, 나는 공부가 미천하여 작은 재주로써 잠시 자연의 순리를 그르치게 하였으니 필시 큰 화를 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도 못 되어 토웅이 근심하던 바가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다.
--- p.77
대개 열등감을 양육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열등감이 타인에게 노출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얼굴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고개를 깉이 숙이거나 구석자리를 찾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다리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치미나 반바지를 꺼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학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학교가 연상되는 대화를 꺼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으며, 가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족이 연상되는 대화를 꺼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화제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까 걱정하는 습성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체로 고독할 수 밖에 없다. 결단력이 부족하고 내성적이며 소극적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공격적인 성격을 나타내 보이는 경우도 있다.
--- p.232
다른 사람에 비해서 자기가 뒤떨어져 있거나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만성적 의식이나 감정을 열등감이라고 한다. 열등감은 과대한 욕망과 부족한 능력 사이에서 태어나는 사생아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애물단지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어떤 방법으로 야육하는가에 따라 불행의 동반자로 성장할 수도 있고 행복의 수호자로 성장할 수도 있다. 희망을 간직한 채 끊임없이 노력하는 양육자에게는 성공의 지름길로 인도하는 수호신이 되기도 하지만, 절망을 간직한 채 속절없이 단념하는 양육자에게는 실패의 벼랑길로 몰고 가는 악마의 하수인이 되기도 한다.
--- p.
<근심퇴치법>
나는 근심에 대해서 근심하지 않는다. 근심은 알고 보면 허수아비다.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으로 가서 허기를 채우려면 마주칠 수밖에 없는 복병들이다. 하지만 어떤 참새라도 그 복병들을 근심할 필요는 없다. 허수아비는 무기력의 표본이다. 망원렌즈가 장착된 최신식 장총을 소지하고 있어도 방아쇠를 당길 능력이 없다. 자기 딴에는 대단히 위협적인 모습으로 눈을 부릅뜬 채 들판을 사수하고 있지만, 유사 이래로 허수아비에게 붙잡혀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어버린 참새는 한 마리도 없다. 다만 소심한 참새만이 제풀에 겁을 집어먹고 스스로의 심장을 위축시켜 우환을 초래할 뿐이다. 나는 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스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서른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마흔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의 근심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지금은 흔적조차도 찾을 길이 없다. 근심에 집착할수록 포박은 강력해지고, 근심에 무심할수록 포박은 허술해진다. 하지만 어떤 포박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린다. 이 세상 시계들이 모조리 작동을 멈춘다 하더라도 시간은 흐른다. 지금 아무리 크나큰 근심이 나를 포박하고 있어도 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하고야 만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런데 내가 왜 시간이 흐르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리는 무기력의 표본 허수아비에 대해 근심하겠는가.
--- p.197-198
<근심퇴치법>
나는 근심에 대해서 근심하지 않는다. 근심은 알고 보면 허수아비다.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으로 가서 허기를 채우려면 마주칠 수밖에 없는 복병들이다. 하지만 어떤 참새라도 그 복병들을 근심할 필요는 없다. 허수아비는 무기력의 표본이다. 망원렌즈가 장착된 최신식 장총을 소지하고 있어도 방아쇠를 당길 능력이 없다. 자기 딴에는 대단히 위협적인 모습으로 눈을 부릅뜬 채 들판을 사수하고 있지만, 유사 이래로 허수아비에게 붙잡혀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어버린 참새는 한 마리도 없다. 다만 소심한 참새만이 제풀에 겁을 집어먹고 스스로의 심장을 위축시켜 우환을 초래할 뿐이다. 나는 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스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서른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마흔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의 근심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지금은 흔적조차도 찾을 길이 없다. 근심에 집착할수록 포박은 강력해지고, 근심에 무심할수록 포박은 허술해진다. 하지만 어떤 포박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린다. 이 세상 시계들이 모조리 작동을 멈춘다 하더라도 시간은 흐른다. 지금 아무리 크나큰 근심이 나를 포박하고 있어도 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하고야 만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런데 내가 왜 시간이 흐르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리는 무기력의 표본 허수아비에 대해 근심하겠는가.
--- p.197-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