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미세한 균열이 있었던 것이다. 그전까지 현준이에게 최치원은 노력과 성취의 아이콘이었다. 출세와 성공에 한계가 있던 육두품 출신이었지만 당나라에 유학하여 자신의 노력만으로 당당히 그 한계를 극복해 버린 사람. 현준이에게 최치원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건 현준이가 살고 싶은 삶이기도 했다.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앞날을 열어젖히는 것. 그 앞에 펼쳐진 완전히 새롭고 멋진 삶. 그런 근사한 미래를 자신의 노력이라면 충분히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현준이가 생각한 최치원의 성공에 3년의 기다림 같은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것을 알게 된 현준이는 당황했던 것일까? 그때 생긴 미세한 균열이 점점 커져서 결국 양저우 행을 뒤엎는 것으로 이어진 것일까? --- p.57
최치원도 그러지 않았을까? 당나라에 있는 내내 그는 문득문득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신라에서는 육두품 신분이 질곡이 되었겠지만 당나라에서는 외국인 처지가 족쇄가 됨을 때때로 깨닫지 않았을까? 열심히 노력해서 어떻게든 그 족쇄를 벗어 버리려 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오로지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가끔은 숨차지 않았을까, 최치원은? --- p.75
현준이가 최치원을 롤 모델로 삼은 것은 그의 빛나는 성공 때문이었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해 그곳에서 성공을 거두고, 다시 신라로 돌아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는 그의 성공담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성공의 이면에는 오히려 좌절이 더 많았음을, 엄밀히 말해서 최치원의 삶은 성공적이기보다 오히려 좌절의 순간이 더 많은 비극적 삶이었음을 현준이는 조금씩 알아 갔던 것이다. --- p.176
현준이가 이해할 수 있었을까, 최치원의 선택이 실패로 이어지는 통일신라 하대의 격랑을. 뛰어난 문학적 재능만으로는 다 해결할 수 없던 시대의 도도한 흐름과 그 흐름을 읽지 못해 결국 시대 저편으로 전설처럼 사라지게 된 최치원의 삶을.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입학한 스무 살 현준. 현준은 변호사를 꿈꾸며 로스쿨 입학을 희망한다. 우연히 신라시대의 학자 최치원을 알게 되고,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당나라에 유학해 부단한 노력으로 재능을 떨친 최치원의 삶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신분제라는 높은 벽을 극복하기 위해 인백기천(人百己千: 다른 사람이 백 번을 노력할 때 나는 천 번 노력한다)의 노력을 쏟은 최치원을 보면서 현준은 자신의 꿈을 그 노력에 투영함과 동시에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페이스북을 통해 최치원을 연구하는 대학원생 달중을 만나 최치원의 삶과 사상을 배워나가며 서로 우정을 나눈다. 당나라 유학 시절 최치원의 흔적을 찾기 위해 중국의 시안과 양저우를 둘러보기로 한 현준과 달중.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 현준은 갑자기 같이 떠날 수 없다는 문자메시지를 달중에게 남기고 나타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중국으로 떠난 달중은 나중에 현준이 나타나지 않은 진짜 이유를 알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