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다. 고딕 소설을 즐겨 읽으며 고전적인 공포를 좋아한다. 그러나 때로는 현실이 더 무섭다고 느낄 때가 많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작품을 찾아서 읽으며, 무덤 속의 무명작가를 합당한 위치로 끄집어낼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세계 호러 걸작선 시리즈’, ‘러브크래프트 전집’(근간) 외에 필명(정탄)으로 『셰익스피어는 없다』, 『피의 책』 등을 번역했다.
……일어서서 떨어뜨린 총을 잡으려는데 모건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런데 그의 비명과 함께 투견의 으르렁거림처럼 거칠고 난폭한 소리가 섞여 있었다. 겁에 질린 나는 일어서려고 버둥거리며 모건이 도망친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 광경을 보고도 내가 살아남았다니 신의 축복이다! 삼십 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내 친구 모건이 한쪽 무릎을 꿇고 섬뜩할 정도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었다. 모자가 벗겨지고 긴 머리칼은 산발이 된 상태에서 그는 전후좌우로 미친 듯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치켜 올린 오른팔에는 손이 없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의 오른손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팔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 기괴한 장면을 기록하는 지금처럼 당시에도 나는 간간이 그의 몸 일부만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몸 일부가 지워진 느낌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렇게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데, 그의 움직임에 따라서 지워졌던 몸이 다시 나타났다. ---「요물」에서
……그때 불어닥친 돌풍이 묘비의 가장 윗부분에 있던 낙엽과 잔가지를 휩쓸고 갔다. 나는 돋을새김된 글자 하나를 발견하고 상체를 구부려 그것을 읽었다. 이럴 수가! 내 이름이 거기 있었다. 내 출생일과 사망일이 거기 있었다! 내가 겁에 질려 벌떡 일어서는 순간, 햇살이 나무 한쪽을 환히 비추었다. 태양이 장밋빛 동쪽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나무와 붉은 태양 사이에 서 있었다. 나무줄기에 던져진 내 그림자가 없었다! ---「카르코사의 주민」에서
……일 미터 오십 센티미터 높이에 근사한 선물처럼 매달려 있는 자루(숙부가 들어 있는)를 보더니, 숫양은 절정의 기분을 만끽하는 것처럼 잠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멈추어 서 있는 자세 그대로 앞쪽으로 돌진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저를 뛰어넘어 대포알처럼 가여운 숙부의 머리를 들이받았습니다. 숙부의 목이 부러졌을 뿐 아니라, 동아줄도 끊어졌습니다. 자루에서 튀어나온 시체가 숫양 앞에 떨어졌습니다. 당시의 충돌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론 핸드 마을과 더치 댄 마을 사이에 있는 시계들이 전부 멈추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근처에 있던 지진의 권위자, 데이비슨 교수는 그때의 진동이 북쪽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살인」에서
……지름이 수십 센티미터 되는 줄기에서 이 미터 남짓 땅을 파들어 가자, 곧바로 쉽게 부서지는 토양이 나타났다. 그때부터 줄기가 갈라지고, 지근과 수염뿌리, 꽃실로 또 나누어졌는데, 그 얽힌 형태가 매우 기묘했다. 조심스럽게 흙에서 떼어 놓고 보니 그 형태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덩굴 자체를 지탱하는 분지(分枝)가 사람 모습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크기와 모양으로 빽빽하게 얽혀 있었다. 머리와 몸통, 사지가 있었고,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또렷했다. 많은 사람들은 공 모양으로 얽힌 부분을 얼굴이라고 단언했다. 전체적인 형태는 가로로 놓여 있었고, 가슴 부근에서 더 작은 뿌리들이 얽혀 있었다. 사람과 닮은 형상 중에서 한 부분이 불완전했다. 한쪽 무릎에서 이십오 센티미터쯤 내려가는 지점에서 섬모가 돌연 겹쳐지더니 뒤쪽과 안쪽으로 자라 있었다. 즉, 왼쪽 다리가 없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