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환자 중에 백혈병에 걸린 일곱 살짜리 남자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유명한 로펌의 변호사로 아들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다녔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암 치료를 했다는 미국 휴스턴에 있는 MD 앤더슨 암센터를 비롯해 몇 군데서 자문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의사 친구의 소개를 받고 나를 찾아왔다. 그는 반신반의하면서 내가 추천하는 방법으로 아들의 치료를 시작했다. 그 변호사의 아들은 2년간의 치료를 다 끝내고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 본문 중에서
“2~3개월 정도 봅니다, 각오하세요” 암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에게 ‘각오하고 있으라’는 식의 설명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이 얼마 남았는지 의사가 안다는 것도 교만이다. 6개월밖에 안 남았다고 하는 사람이 3~4년씩 잘 살고 있고, 그 반대로 3년은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던 사람이 몇 달 만에 죽을 수도 있다. 삶에는 예외가 너무나 많다. 현대 의학이 아무리 진보된 기술로 계량화시킨다 해도 1기, 2기, 3기, 4기처럼 수치로써 인간을 표현하지 못한다. 따라서 질병에 대한 치료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질병을 가진 인간에 대한 치료, 전인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는 확신이 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저 괜찮을까요? 유방이 한쪽 없는데…” 생이 오락가락하는 판에 유방을 걱정할 정도로 공주나 왕비과 환자가 있다. 평소 응석받이에다 왕비 기질을 가진 아내가 암에 걸렸다면 남편은 좀 더 잘해야 한다. 그런 환자들은 기분이 좋아졌다 우울해졌다를 반복하는 조울증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들은 변덕이 죽 끓는 듯하다. 금세 밥 먹고 싶다고 해서 차려주면 입맛 없다며 휙 돌아앉아버린다. 이런 환자들은 한편으로는 받아주면서 한편으로는 권위를 내세워 반드시 따르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 그 왕비마마 환자는 처음 내 진료실을 두드릴 때와 달리 얼굴이 아주 밝아졌다. 한때 4기였다라고는 아무도 믿지 못할 정도로 활기차고 본래의 멋쟁이 모습으로 돌아갔다. 가끔은 농담도 던진다 “남편한테 ‘한쪽만 있어도 많이 사랑해주세요’라고 했어요”- 본문 중에서
“도대체 오리진(origin)을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 환자는 30대 초반의 이비인후과 의사였다. 나를 찾아온 2005년 3월, 수술 한 번에 여섯 번의 약물 치료를 받았는데도 간에 두 군데 전이가 되어 있었다. 간에서 제법 큰 암 세포가 발견되었는데도 어디서부터 그 암이 시작되었는지 의사들이 아무리 검사를 해봐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케이스는 매우 희귀한 경우이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손발이 저리는 증세까지 보이는 이 환자는 3개월 진단을 받고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자기도 의사지만 이렇게 답이 없는 경우를 당하고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경황이 없었던 것이다. 그 환자는 치료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면역 수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석 달 만에 다시 현업에 복귀했다. 그는 종합병원 이비인후과 의사로 하루 종일 바쁘게 환자들을 진료하고 시간이 나면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하며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