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코릴리아노(1938): "독주 피아노를 위한 오스티나토에 의한 환상곡"
무조주의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새로운 음악의 길을 열고자 하는 미국 작곡가중 한 사람, 코릴리아노는 그만의 독자적이고도 빛나는 역정을 걸어 왔다. 1985년에 쓴 이 작품 이래로 그의 목표는 "미니멀리즘의 매력적인 요소를 설득력 있는 구조와 감동적인 표현으로 결합하는 것"이었다. 이 환상곡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베토벤 7번 교향곡 2악장의 유명한 주제이다. 코릴리아노는 이 주제에 반복적인 리듬 동기와 화성 양식을 적용해 그의 목표와 어울리는 작품을 완성해 냈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1770-1827): 피아노 소나타 17번 D단조, 작품번호 31-2, "폭풍우(템페스트)"
작곡가 자신이 이 작품에 "폭풍우"라 이름 붙인 것은 아니다 - 전기 작가 쉴러는 베토벤이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음으로써 이 작품의 온전한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고 얘기했음을 전한다 - 하지만 음울한 도입부를 깨뜨리고 솟아나는 첫 번째 주제에 귀 기울인다면 이 작품이 분명 폭풍우를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입부의 선율들은 마치 거친 대지 위에서 어둡고도 고달픈 여정을 마치며 던지는 질문과 같고 폭풍우의 부분은 그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는 듯 하다. 이 작품은 베토벤의 귀가 점점 멀어가던 시절, 거의 자살 직전까지 이르렀던 처절한 절망감의 시절이었던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의 마을에서 작곡한 세 개의 소나타중 하나이다. 이 시절의 그와 그의 음악은 가장 영웅적이다. 응집된 힘으로 최고의 걸작을 생산했던 이 시절의 작품들은 후손에게 남길 (대신 동시대인에게는 감추고 싶어 했던) 그의 고뇌와 애통함을 담은 "하일리겐슈타트 복음서"라 할 만하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 피아노,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환상곡 C단조, 작품번호 80, "코랄 환상곡"
첫 3분 여간 파괴적인 힘으로 토해내는 피아노의 음향은 마치 이 곡이 독주곡인 것처럼 들리게 한다. 이 독주가 지나고 나면 잠시 동안 저음 현악부와의 대화가 흐르고 목관과의 대화가 이어진다. 뒤늦게 떠오른 생각처럼 사람의 목소리가 가세한다. 물론 이 작품은 환상곡이다. 연주자 각자에게 전달된 악보에 채 마르지 않은 잉크가 남아 있을 정도로 빠르게 쓰여진. 피아노가, 간단하지만 전 작품의 굳건한 근거를 이루는 주제를 들려 주고 나면 마치 베토벤이 살아 생전에 들려주었음 직한 즉흥연주 느낌의 대목이 듣는 이를 긴장하게 한다. 1808년에 베토벤은 거의 한 푼도 벌지 못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제안한 것은 그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4시간 짜리 음악회 프로그램이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연주회 때문에 쓰여지기는 했지만 작품의 완성도로 보자면 빈 공간이나 메꾸는 충전재와는 거리가 멀다. 이 곡은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어둠을 거두어 빛을 비추는, 그리고 9번 교향곡 마지막 주제의 전조를 비추는 작품으로, 그야말로 베토벤의 모든 천재성이 최고조로 발휘된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아르보 패르트(1935): 피아노, 혼성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크레도"
1968년 작품, "크레도"는 작곡가 패르트가 초기의 12음 기보법에서 벗어나 오늘의 명성을 가져다 준 종교적 은총의 엄숙성을 지닌 음악세계로 발전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에 쓰여졌다. 하나의 음악체계가 다른 것으로 전복되는 와중이었지만 이 작품은 여전히 도발적이다. 하지만 "크레도" 초연 때의 그것은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기독교 신앙을 시인한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에스토니아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도발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대한 아르보 패르트의 얘기를 들어보자: "1960년대에 저는 기독교의 중심 사상인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에 깊이 빠져 있었고 바로 이 믿음이 "크레도"를 쓰게 했습니다. 이 작품은 대적하는 세계를 표상하는 두 개의 음악이 서로 화해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한 편에는 12음 기보법으로 쓰여진 음악이 있고, 그 반대편에는 바흐의 프렐류드에 바탕을 둔 편곡이 서 있습니다. 작품의 전개 속에 제가 보여주고자 했던 모습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리가 언뜻 보면 전혀 나쁘지 않은 것 같지만 이것이 자라나면 철저히 파괴적인 양상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는 것, 어떤 힘의 팽창은 마치 눈사태가 일어날 때의 모습처럼 자기가 조절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서 스스로를 파괴하고야 만다는 그 사실이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핵 연쇄반응처럼 가차없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인간의 정의로 여겨지던 것이 결국에는 그 정반대가 되어 버리고 마는 법입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 예수의 이 말씀처럼 급진적이면서도 인간의 이해력으로 파악되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말은 없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무너 뜨립니다. 하지만 아직도..."
처치: 하지만 코릴리아노는 어떻게 된 것이죠? 매력적이기는 해도 제게는 과제(課題)곡처럼 들리는데요.
그리모: 맞습니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지요. 하지만 저를 사로잡았던 것은 베토벤 7번 교향곡의 주제에 이어 나타나는, 제 손을 서로 교차하면서 연주해야 하는 극히 환상적인 부분의 도입부였습니다. 갑자기 이 작품은 패르트의 "크레도"처럼 신비한 것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과거의 작품을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작곡가가 변주한 또 하나의 예입니다. 동시에 모든 것은 하나라는 관념을 실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처치: 피아노와 사랑에 빠진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리모: 어렸을 때, 저는 정말 엄청나게 힘이 넘쳤습니다. 부모님은 이것이 그저 육체적인 힘의 과잉이라고 생각하셨지만 실제로는 심적, 정서적인 힘의 과잉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린이들이 지나친 무질서에 빠져 있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의견에 반대합니다 - 저는 정말로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부모님은 제가 힘을 쏟을 수 있는 방향을 잡아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고 결국 제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음악이었습니다. 음악은 끝 모를 심연처럼, 절대로 탐사를 끝 마칠 수 없는 깊이로 제게 나타났습니다.
처치: 산이 아니라 바다입니까? 참 독특한 비유군요.
그리모: 어렸을 때의 저를 생각하신다면 자연스럽게 여기실 수 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잠 자기 위해서 저는 눈을 아주 꽉 감곤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알 수 없는 색의 솔기 같은 것을 보게 되고 끝없이 광대한 공간도 느끼게 됩니다. 제게는 이 순간들이 공허한 색과 타자(他者)들로 가득 찬 세계를 경험하는 시간이었고 저는 그 극한의 단계까지 가 보는 것은 즐겼습니다. 피아노를 연주할 때, 저는 마찬가지의 느낌을 갖게 됩니다.
처치: 늑대와의 교류는 어떻게 시작된 겁니까?
그리모: 플로리다에서 제 인생 최초의 늑대를 만났습니다. 한 밤중에 친구의 개와 산보하는데 어떤 남자가 개과의 동물은 분명하지만 절대 개는 아닌 어떤 동물과 함께 있는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동물은 매우 부끄러워했지만 분명히 제게 관심을 보였습니다. 한 달 뒤 저는 그 녀석과 다시 만났는데 이 때는 제게로 몸을 굴리더군요. 이 암컷 늑대가 풍기는 묘한 기운이 저를 사로 잡았습니다. 신비로운 느낌, 인간의 굴레에 갇혀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 다른 영혼과 만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처치: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 혹시 그 늑대와 자신을 동일시한 것은 아닌지요?
그리모: 의식적으로 그러지는 않았습니다(웃음). 하지만 누가 압니까? 어떤 교감이나 감응이었을 수도 있죠. 어쨌거나 저는 그 늑대를 꾸준히 찾아갔고, 이렇게 함으로써 늑대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를 완성하면 다른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 저와 음악의 관계가 바로 그러합니다. 열정으로 시작했던 것이 저항할 수 없는 책임감의 무게를 지닌 사명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처치: 늑대가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그리모: 늑대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함축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유로 보다 광범위한 자연보호 노력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늑대는 그가 처한 자연환경 속에서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들은 북반구 대부분의 생태계에 존재하는 종다양성을 조율하는 엔지니어입니다. 뭔가 바꾸어 보겠다고 노력하던 중에 뉴욕의 제 집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던 프로젝트에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이 곳은 늑대를 기르는 교육센터인데 찾아오는 어린이들에게 늑대와 환경을 배우게 합니다. 교육은 장기간에 걸쳐 시행해야 할 자연보호 활동입니다. 또한 클래식 음악이 살아 남기 위한 최선의 방법 또한 어린이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끝없이 광대한 이 작업이 완수되려면 다음 세대, 즉 어린이들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습니다. 교육은 다가오는 세대의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건강과 행복은 우리가 얼마나 이 지구에 충직한 집사가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처치: 마치 당신 자신의 공동체를 구성한 것처럼 들리는군요.
그리모: 저를 항상 따라 다니는 문제는 제가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 점입니다.
처치: 요즘에는 프랑스인으로서의 정체감을 어느 정도로 갖고 계신지요.
그리모: 저는 아직 프랑스 시민입니다만 제가 프랑스인으로 태어났다고 느낀 적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제 가족의 계보를 살펴 보면 아주 다양한 민족 - 이탈리아, 코르시카, 북부 아프리카 등이 결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액상프로방스에 간다 해도 저는 집에 돌아온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반면에, 독일에 가거나 독일 음악과 함께 하면 늘 편안한 마음입니다.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내가 어디 출신이고 어디에 속해 있느냐 하는 고민에서 벗어났습니다. 저는 이제 어느 곳으로도 떠날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 것은 제게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처치: 일전에 마르타 아르헤리치와의 만남을 통하여 자신이 음악적으로 유별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는데요.
그리모: 예, 그랬습니다. 파리 음악원에 다닐 때 종종 알프레드 코르토 전집을 교재로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요. 이 앨범들은 손가락과 페달 사용을 매우 엄격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저는 연주회장의 크기와 상황에 따라 타건의 방법이나 연주할 피아노를 바꾸었고 음향에 따라 페달의 사용에도 변화를 주었습니다. 코르토 에디션은 연주의 난점을 추출하여 외과적인 처방을 내리고 개별 연주의 내용과는 상관 없이 이 처방을 방부 처리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제가 볼 때 이건 부조리한 일입니다. 장애물에 사로잡힌 말이 그걸 뛰어넘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건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우리는 음악이 던지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 - 이 대목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디로 향하는가? - 에 집중해야 합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저와 같은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엘렌 그리모가 얘기하는 크레도 앨범과 그녀의 삶 - 마이클 처치와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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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치: 연주와 관련된 부분을 떠나서 당신은 두 가지 점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한 가지는 음을 색깔로 느낄 수 있다는 소위 음색시각(音色視覺)이라는 비범한 감각이고, 다른 하나는 늑대와의 특별한 관계인데요. 먼저 음색시각에 대해 얘기해 보죠. 어떻게 본인이 이런 능력의 보유자란 것을 알게 되었는지요?
그리모: 11살 때,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F샵 장조 프렐류드를 연습하던 중이었습니다. 뭔가 매우 밝고, 빨강과 주황의 중간색으로, 매우 따뜻하면서도 선명한 느낌의, 특정 형태를 띄지 않은 얼룩 같은 것, 말하자면, 레코딩 스튜디오 조정실에서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소리의 영상을 그 때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숫자도 색깔로 느낄 수 - 예를 들자면, 2는 노랑, 4는 빨강, 5는 녹색과 같은 식으로요 - 있었고 늘 음악이 다른 차원의 무엇인가를 환기시켜 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 경험을 놀랍다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건 색깔 자체, 그 이상의 색채감이었습니다. 특정 작품들은 항상 특별한 색의 세계를 저에게 투영합니다. 어떨 때는 조성의 결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 예를 들자면, C단조는 검정, 그리고 제가 항상 가장 친숙하게 여기는 D단조의 경우는 극적이고 톡 쏘는 느낌의 파랑과 같은 식이죠.
처치: 이 특별한 감각과 이번 앨범 수록곡을 연결해 설명해 주신다면?
그리모: "코랄 판타지"는 검정, 초록, 빨강, 노랑이 나선형으로 엮여 있습니다. "템페스트" 소나타는 검정과 파랑이 분명하고 코릴리아노의 환상곡은 전반적으로 붉은 색입니다. "크레도"는 검정과 녹색이 교차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처치: 좋습니다. 색상에 바탕을 둔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음악적인 원리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누구의 생각으로 이 앨범이 시작되었는지요?
그리모: 전적으로 제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연주 프로그램이 제 내부에 어떤 울림을 주지 않아서 연주회를 연기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별나 보이는 음반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믿어 주고 작업방식에 합의해 준 도이치 그라모폰의 결정에 기쁘고 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작업은 시인 노발리스가 이미 설파한 바의 독일 낭만주의의 정수인 보편주의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처치: 수록곡은 어떻게 선정했습니까?
그리모: 묵직하게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베토벤의 "코랄 판타지"입니다. 베토벤이 이 곡을 초연했을 때처럼 협주곡 4번 및 다른 몇 개의 곡들과 함께 "코랄 판타지"로 구성된 프로그램의 연주를 의뢰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 못해 연습을 시작했는데 이후로 이 작품이 제 안에서 의미 있는 모습으로 자라나더니 이전에 제대로 이 곡을 바라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갖게 했고 전 혼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비록 거칠고 잘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지만 그 정신, 프로메테우스의 몸부림을 칠 수 밖에 없는 보편적 인간의 모습을 반영하는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아주 쾌활했고, 초월적이었으며 또한 감동적이었습니다 - "코랄 판타지"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그 연주회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치: 그렇다면 다음 곡은요?
그리모: 어떤 작품으로 균형을 맞추려 했느냐 하는 질문이죠? 물론 베토벤 협주곡이 분명한 대안이었습니다만 확신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코랄 판타지"의 철학적 의미로서의 타자(他者)로 기능할 그 어떤 것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분명한 어떤 것이 떠오르기 전 까지 이 프로젝트를 잠시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뭘 하다가 막히면 늘 이렇게 하죠. 결국 베를린에서 아르보 패르트를 만날 기회가 생겼고 저는 그의 작품 중에서 이 경우에 맞는 피아노 협주곡 작품을 추천해 줄 수 있는 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아르보는 악보를 꺼내 뒤지더니 "크레도"를 제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모든 훗날 음악들의 성스러운 배경이 되는 바흐 프렐류드에 근거해 그가 "크레도"를 썼다는 사실에 저는 바로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악보에 '검은' 부분, 즉 연주가들의 즉흥연주를 허용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은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을 통해 많은 것을 이룰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이거야 말로 일종의 자궁(子宮)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부분은 혼돈을 상징하지만 절대로 혼돈스럽게 연주되어서는 안 됩니다. 텍스트를 관통하는 수학적인 양식, 어떤 틀을 가지고 연주에 임해야 한다고 봅니다.
처치: 당신의 연주는 이 작품에 예언적인 힘을 불어 넣었습니다. 제게는 이 연주가 마치 당신의 관조적 능력으로 작품을 다시 작곡한 것처럼 들리는데요.
그리모: 다시 작곡했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모호하게 만들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고 싶었을 뿐입니다.
처치: 그건 뭘 의미하는 거죠?
그리모: 어떤 종류의 이데올로기, 국가 또는 종교에 맹목적으로 복종한다는 것은 악이며 궁극적으로 파괴적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코랄 판타지"를 함께 녹음하기로 한 것입니다.
처치: 그 다음으로는요?
그리모: 이 두 작품은 그들의 성결함으로 서로가 연결된다는 의미에서의 독일 낭만주의가 얘기하는 일자의 관념을 제게 제시했습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저는 "폭풍우(템페스트)" 소나타를 추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처치: 왜요, 패르트와 마찬가지로 그 작품 또한 광폭함을 다스리기 때문입니까?
그리모: 제대로 보셨습니다. 부정적인 천성은 수용과 화해로부터 배태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음악이 만들어진 그 최초의 순간과 함께 하던 장치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결과적으로 놀랍게도 현대적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