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위로하면서 말한다. 슬퍼하지 말라고, 이겨내라고, 툭툭 털고 일어나라고. 그러나 한번 찾아온 슬픔은 삶 속에 섞여서 매일, 매월, 혹은 매년,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그러니 울지 말라는 것은 위로가 아니다. 그 대신 마음껏 울라고 하자. 그립다고, 슬프다고 말해도 괜찮다고 알려주자. 제발 그들의 ‘슬퍼할 권리’를 빼앗지 말자.
--- 에필로그, ‘마음껏 슬퍼할 권리’ 중에서
인생이라는 영화 한 편에는 기쁜 장면도 슬픈 장면도 모두 다 섞여 있다. 그래서 기쁜 곳만 바라보고 슬픔이 올 때 한쪽 눈을 감아버린다면, 영원히 미완성인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안녕, 아빠》는 자신은 물론이고 어린 아들에게도 인생의 슬픔을 마주볼 기회를 주는 한 어머니의 기록이다. 기쁨의 환희, 슬픔의 애상 등을 마음창고에 빼놓지 않고 담아두어야 훗날 꺼내어보고 자신의 삶을 더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 예기치 못한 이별은 너무 아프다.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됐는데, 못 다한 말이 많은데, 이렇게나 그리운데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다니. 떠나는 자와 보내는 자, 모두에게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이고, 그러려면 슬픔을 마주 볼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겠지. 바로 패티네 세 식구가 그랬던 것처럼.
--- 옮긴이의 글 중에서
그날 밤 남편과 아들이 잠을 자는 사이 조용히 일어나 컴퓨터를 켜서 ‘글리오블라스토마’를 검색했다. 모니터에 나타난 검색 결과를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갔다. ‘환자의 모든 기억과 신체 활동 능력이 서서히 소멸된다.’ 갑자기 남편의 휠체어와 아들의 유모차를 낑낑대며 밀고 있는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임신한 친구에게 유모차를 주어야겠다고 중얼거렸다. 두 개를 동시에 밀 수는 없을 테니까.
--- p.17
“부모를 잃게 될 아이에게는 세 가지를 이야기해 주어야 해요.”
샐리의 목소리도 침착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나만 빼고 다들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먼저 부모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사실대로 말해 주세요. 만약 병에 걸린 것이라면 반드시 병명을 말해주셔야 하구요. 마지막으로 의사 선생님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그들이 부모님에게 가장 좋은 약을 줄 것이라고 믿음을 주세요.”
나는 전화를 끊고 아이의 방으로 갔다.
“제이크.”
아들과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빠가 머리에 병이 생겼어. 종양이라고 하는 거야.”
제이크가 “총양” 하고 혀를 꼬부려 따라했다. 그래서 우리는 새 단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병의 이름, 죽음에 관한 단어, 그리고 이 모든 것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 관한 언어 등을 말이다. 제이크가 ‘티란노사우루스 렉스’라는 단어를 배우게 되면 ‘글리오블라스토마(뇌암 병명)’도 틀리지 않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 p.25
“아빠가 곧 숨쉬는 걸 그만두실 것 같아.”
내가 손을 내밀자 제이크가 내 손을 잡았다. 아이는 남편의 침대로 올라가 아빠 얼굴에 뽀뽀를 했다. 그리고 남편은 숨을 멈추었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빠는 이제 생일 파티 못하겠네.”
아이가 심각하게 말했다. 그리고 침대에서 내려와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재주넘기를 보여주었다. 나는 예전에 적어서 전화번호부에 끼워두었던 장례식장 번호를 찾아내어 전화를 걸었다.
“지금 바로 찾아 뵙겠습니다.”
“아니, 아니요. 두 시간 뒤에 와 주세요.”
밖에서는 여름 밤의 열기를 식히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두 시간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제이크와 나는 남편과 함께 한 방에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밖에서는 천둥이 치고 안에서는 제이크가 계속해서 재주를 넘었다.
--- p.151
<세서미 스트리트 Sesame Street>에서 가게 주인 역할로 나오던 후퍼 씨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제작진 사이에서 논쟁이 일었다. 만 6세가 안 되는 어린이 시청자들에게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회의가 계속해서 열렸고 여러 가지 방안이 검토되고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다. 후퍼 씨가 여행을 떠났다는 내용의 대본을 만들까? 몰래 새 배우를 교체하면 아이들이 모르지 않을까?
그들의 결정은 다음과 같았다. 하나, 후퍼 씨 역할을 맡은 배우가 죽었다는 내용의 대본을 쓴다. 둘, 후퍼 씨가 죽어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셋, 후퍼 씨가 그립고 보고 싶다고 말한다. 거짓말은 없었다. 특별히 정교할 것도 없는 해법이었다.
제이크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아빠를 찾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내 아이가 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 어떻게 위로해 주지? 그런데 샐리(아동상담가)의 충고를 들은 뒤 간단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아빠가 있으면 어떻게 할 건데?” 제이크가 울음을 멈추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목말을 태워달라고 할 거야!” 아이의 바람은 간단하고 구체적인 것들이었다.
--- p.176
“이제 아빠가 생각이 안 나.”
아이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아빠 목소리도 기억이 안 나. 엄마, 나 레모네이드 한 잔만 갖다 줘.”
존 F.케네디 주니어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백악관에 살 때 진짜로 아버지의 책상 아래 앉아서 놀았었는지 아니면 이런 사진들이 자기의 기억을 만들어냈는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레모네이드를 따르며 나는 혼자 웃음을 지었다. 이것도 하나의 과정임을 그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마 15년쯤의 시간이 흐르거나 노인이 되었을 때 제이크에게 남아 있는 아빠에 대한 기억들이 있겠지. 어쩌면 그때가 제이크에게는 추억을 더듬어야 할 적당한 시기일 것이다. 지금이 아니라…….
--- p.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