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8~29 신은 이런 식으로 겉모습을 관찰하고 알아볼 수 있는 손님이 아니다. (…) 전문용어를 사용하자면 우리는 우연적 존재로서 시공간의 일부이지만, 신이 모든 우연적인 것의 근원이라면 신은 우연적이지 않다. 신은 그저 있다. 신이 그저 있어야만, 그리고 우리와 달리 신이 특정한 시공간에 속하지 않아야만, 신으로부터 시공간(실은 만물)이 생겨날 수 있고 신에 의해 시공간이 유지될 수 있다. 신이 신이려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생산하되 그 자신은 생산되지 않아야 한다.
P.69~70 ‘신이 어떠한지’를 우리에게 최종적으로 완전하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신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려 할 때 지극히 근사적이고 수정할 여지가 있는 말과 상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렇지만 표지판과 그것이 가리키는 목적지가 같지 않음을 기억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여기서 쟁점은 언어가 아무리 불충분할지라도 무언가에 이르는 길을 가리키느냐 가리키지 않느냐는 것이고, 이와 똑같은 고찰이 과학의 언어와 모델에도 적용된다.
P.77 모든 신자가 이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실제로 많은 신자들은 세계(“인간의 삶이라는 분주한 무대”)가 종교의 의제를 설정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세계는 언제나 종교의 의제뿐 아니라 신의 의제까지 ‘설정한다’. 세계가 중간에서 매개하지 않는다면, 신은 이를테면 특정한 환경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말을 걸거나 그들을 구하기 위한 진리의 말씀을 육화하지도 계시하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