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를 말더듬이로 지냈다. 더듬는 게 싫을 땐 아예 입을 다물어 버렸다. 중학교는 도시로 갔는데 말을 잘 못하는 촌놈이라고 ‘old baby’라는 별명이 붙었다. 말 대신 쓰는 것을 좋아했다. 시를 써서 보여 줄 때마다 유치하다고 놀리는 친구들이 많았다. 교과서에 실린 시에 시비를 걸고 싶어졌다. 학생들이 참고서 없이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는 없을까. 왜 참고서는 하나같이 똑같을까. 왜 시 쓰는 것은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 쓰고 즐기는 것이 먼저인데 시험만 잘 보면 잘 가르치는 것이 되었다. 교과서 시를 비트는 시를 써 오다가 청소년이 주체가 되는 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9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바람의 땅에 서서』, 『가랑이 사이로 굽어보는 세상』 등의 시집을 냈다.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가 맞지. 그치? 그런데 올챙이도 개구리를 알 리가 없잖아. ‘올챙이 개구리 적 모른다’도 맞잖아. 그치?
사실 엄마 심정, 나 잘 이해 안 돼. 말을 하지 않고 참았다가는 그냥 폭발할 것 같아서 “그래서 어쩌라고?” 한마디 했더니 엄마 속을 긁는다고 버럭했잖아. 나 급실망해서 아무 대답도 못 했어.
엄마가 이야기하는 거 다 억지 같고 강요 같았어.
엄마, 나 아직은 올챙인가 봐. ---「그래서 어쩌라고」 중에서
넌 왜 가르마를 왼쪽으로 탔어? 그냥 머릿결이 가는 대로 탔어.
넌 어디로 탈 거야? 난 고등학교 가면 탈 건데 오른쪽으로 탈 거야. 왜? 네가 왼쪽으로 타니까. 그게 이유가 되냐?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엄마도 왼쪽, 아빠도 왼쪽 선생님들도 거의 왼쪽이니까 나는 오른쪽으로 그게 이유라면 이유지, 뭐.
그럼 내가 왼쪽으로 타는 게 싫다는 거야? 아니, 그런 이야기는 아니지. 그러면, 내가 타는 쪽과 반대로 가는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다만. 다만, 뭐?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는 쪽보다 적게 하는 쪽으로 하고 싶은 거지.
왜 그래야 하는데? 가르마도 3 대 7, 4 대 6처럼 한쪽은 많고 한쪽은 적잖아. --- 「궁금 바이러스 3」 중에서
서술형 평가를 망쳤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의 뜻을 서술하는 문제였는데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면 불가능한 일도 이룰 수 있다’라고 썼는데 부분 점수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이의 제기를 했다. 틀린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찾아갔는데 공부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틀린 건 아니잖아요. 배운 것에 갇혀 있는 것보다 낫잖아요? 공부한 것에 너무 갇히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이미 알려져 있는 생각의 틀, 상상의 틀을 뛰어넘으라면서요.
그래, 알았어요, 알았어요. 그럼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의 뜻이 뭐예요? 이걸 말하면 맞은 걸로 해 줄 수도 있어요. 그런 게 어딨어요. 그건 다른 문제잖아요. 알았어요. 그래도 말해 봐요.
‘백지장도 맛이 들면 먹을 만하다’ 아닌가? 잉? ‘백지장’이 뭔데요? 고추장, 양념장 그런 거. 헐~, 찾아보고 와요. 사실, 자신감을 가지고 답을 쓴 건지, 장난으로 쓴 건지 알아보려고 했어요. 아주 기발했어요.
이 시집에 한 아이가 산다. 나이는 열대여섯 살 정도, 가끔 여자인 척할 때도 있지만 개구쟁이 남자아이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선생님한테 “되게 귀여워요.”라고 말하는가 하면 할머니한테 “개새끼가 왜 욕이에요?”라고 진지하게 묻기도 하고, 여자 친구한테는 “마술은 왜 걸려?”라고 대놓고 물어본다. 아이들의 말은 ‘라이브’다. 우리는 이 라이브 방송을 들으면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늘에서 일방적으로 내려 주는 말씀이 아니라 스스로 사다리를 만들도록 도와줄 대화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지금 “날 일(日) 자로”, “눈 목(目) 자나 밭 전(田) 자로”, 때로는 “다이아몬드 전략으로”(「오목 대결」) 세상에 나갈 사다리를 궁리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