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까지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미국식 영웅주의에 사로잡혀 미국 만세와 성조기로 스크린을 가득 메우던 게 현실이었건만, 이 작품에선 할리우드 시장의 20%를 차지하는 일본에 대한 배려를 위해서 나구모 제독이 "잠자는 거인을 깨운 게 아닐까?"하는 대사와 공격기의 후방사수가 어린아이들에게 피하라고 손짓하는 장면, 그리고 나름대로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게 된 배경, 미약하지만 석유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어서 어느 정도 일본측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었다. 물론 이런 영화 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일본은 철저하게 사악한 존재로 그려졌을 것이다.
--- p.86 ('진주만' 중에서)
이 영화는 정확히 말해 흥행영화에 있어선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스필버그가 작심을 하고 만든 '할리우드 판 전쟁영화'이지, 그 어떤 의미를 두기엔 무리가 가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영화적으로 나쁜 영화냐면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영화의 미덕, 그러니까 그 누구도 실현하지 못했던 사실적인 오마하 비치의 상륙작전 모습을 그려냈고, 고전적인 전쟁영화의 답습으로 옛 추억을 회상하게 만들었단 점 등은 나름대로 의미를 둘 만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란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스티븐 스필버그가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것 역시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수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 p.193 ('라이언 일병 구하기' 중에서)
이 영화는 그 무미건조한 카메라의 시선 덕분에 관객들에게 최대한의 객관성과 사실성을 전달해준다는 느낌을 주었고, 실제로 그런 노력 덕분에 이 영화는 전쟁터의 한가운데서 취재한 뉴스나 다큐멘터리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객관성 덕분에 소말리아 인들의 야만성과 미군의 '따뜻한 전우애', 그리고 소말리아에 투입된 미군의 정당성이 부각되어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앞전에서 몇 번이나 언급했던 소말리아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애써 외면한 듯한 시선은 또 어찌 설명해야 할까? 19명의 미군 목숨과 1,000여 명의 소말리아 인의 목숨이 같은 가치로 인정받을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마지막 장면의 수송기안의 전사자들의 관은 그렇게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깊이 자리잡겠지만, 그냥 이름 없는 1,000명 중의 한 명으로 남아 있을 소말리아 인들에 대한 기록은 누가 기억해주고, 기록해줄 것인가?
--- p.276 ('블랙 호크 다운' 중에서)